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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13. 2021

빚으로부터 휴가

대출금을 갚다!

우리 집 안방 붙박이 장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지난 2년 9개월 2주 동안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살았다. 붙박이 장에 붙은 문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고 뇌리에 각인시켰다. 혹시라도 나약한 마음이 들어서 일을 그만둘까 봐 두려워서였다. 내가 아파트 산다고 대출받은 돈이 1억 7천5백이었다. 혼자 매달 꼬박꼬박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고도 대출금 조기 상환을 위해 저금을 했다. 대출을 받고 안정기에 들어선 후 한 달에 3백만 원을 저금했는데, 남편도 처음에는 1백만 원을 보내 주다가 이후 1백50원으로 늘려서 보내 주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오늘 드디어 대출금 상환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빚만 갚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막상 빚을 갚고 나니 아무런 흥이 없는 이유는 지금의 빚 없는 삶이 보름 후에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빚으로부터 이주 휴가를 받았다고나 할까?!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에, 곧 빚을 갚기 위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가능하면 보름 후에 받는 대출은 최소액으로 하려고 계획 중이다. 매일 일어나 숨만 쉬고 있어도 대출 이자금은 멈추지 않고 더 큰 숫자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3년 전 아파트를 산 후, 대출금을 모두 갚았고 게다가 아파트 값도 상승을 해서 자산이 꽤 늘었다. 빚을 갚기 위해 산 삶의 결실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앞으로 3년 후에 나는 똑같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대출액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상환할 수 있는 시기 또한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대출 상환하고 남은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에 전혀 무신경했던 내가 상당히 한 셈이다. 혼자 아파트를 사고, 그 아파트를 팔고, 또 다른 아파트를 산 나 자신이 참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출금도 다 상환했으니 말이다. 처음 아파트를 산다고 했을 때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남편이 내가 자산을 늘렸더니 아주 기뻐한다. 이제는 본인도 저축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말이다.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성공의 맛을 보아야 다음 성공을 위해 더 노력할 수 있다는 나의 가설이 틀리지 않은 듯싶다. 


빚 없는 생활이 딱 보름이긴 하지만 나는 이 성공을 만끽해야겠다. 그래야지 다음 대출금도 성공적으로 갚고, 자산도 늘려서  퇴직 후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이사 가는 집에도 이 문구는 또다시 걸려 있을 것이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냉정한 문구 덕분에 나는 지난 2년 9개월 2주를 견딜 수 있었고, 오늘 마침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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