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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21. 2021

장애는 불편한 것뿐... (표형민 화가)

지난주 온라인 교육을 마치고 진정한 휴가를 맞이하는 월요일이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난 탓에 좀처럼 피로감이 가시질 않았다. 일단  훌라후프로 하체 운동을 한 다음, 가야금으로 상체 운동을 했다. 가야금을 처음 시작한 지도 이제 꽤 된 것 같은데, 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해서 다시 시작할 때마다 전에 배운 민요도 한참을 헤맨다. 내 손으로 익숙한 멜로디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맥도널드에서 브런치를 시켰다. 사춘기 아이가 자꾸 초등 입맛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이나 훌라후프, 가야금, 산책 같은 취미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티브이를 본다. 주로 보는 채널은  건축가 부부가 소개하는 <건축 탐구- 집>, <나는 자연인이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들로 대부분 자연친화적이거나 사실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다.


 최근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 그램을 유심히 보고 있다. 사실 본방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티브이에서 채널을 돌려가며 보는 것이라 내가 보는 그 프로그램은 모두  재방송이다. 본방을 본 사람들은 그때그때 감동을 받겠지만, 나는 사연과 인물이 소개되고 난 한참 후에서 알게 된다. 어찌 됐던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하더라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는 것은 나로서는 행운이다. 최근 며칠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소개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그 사람들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70대에 암벽등반을 하시는 할머니도 계셨고, 90대에 등산을 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50대 후반에 한강에서 서핑하는 사람도 있었고, 암벽 등반하시는 할머니의 친정 엄마는 90세인데 조깅도 하시고 배드민턴을 잘 치셨다. 그런 기이한 사연을 보고 있으면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개성이 강한 사연의 주인공들이 멋진 말을 한마디씩 남기기도 다. 그중에 사인 스피닝을 하는 어떤 젊은이는 "꿈은 롤러 코스트다"라고 말했고, 암벽 등반하시는 할머니는 "인생은 암벽등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계속된 훈련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그중에서도 노화와 정면 도전을 하듯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열정을 보이시는 노인분들 또한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등산을 주로 하시는 90대 할아버지는 " (지팡이는) 젊은 사람들이나 써"라고 하셔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왔다. 전에 우리 옆집에 발로 그림을 그리는 가가 살았고, 우리 둘째 오빠랑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지만 나는 한 번도 직접 그 화가를 만나 본 적은 없다. 둘째 오빠에게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대해 몇 번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티브이에 나온 화가도 관심 있게 보았다. 선천적 기형으로 손은 전혀 쓸 수가 없고, 다리는 어린아이 다리처럼 아주 가늘고 구부정했지만 그는 발을 손처럼 사용해서 멋진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 실력보다 더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무한 긍정 에너지였다. 마치 호주 선교사 닉 부이치치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2013년 6월 8일, 닉 부이치치가 서울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여덟 살 딸을 데리고 서울에 갔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에는 세 시간가량을 줄을 서서 기다렸고, 당일 마지막 기차를 타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오기 위해 콘서트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다. 내가 그를 보러 간 건 그가 쓴 책을 두 권 읽고 난 후, 그를 꼭 만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해도 나는 세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 가며 꼭 만나보려고 애쓰진 않았을 것이다. 닉 부이치치에게 그토록 감명을 받았던 것은 그의 무한 긍정의 에너지였다.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표형민도 그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부탁하지 않기 위해, 손도 대지 않고 양치하는 법을 개발해야 했고 자리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바닥에 "쿵" 찧으며 앉아서 '엉덩이 뼈가 상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가 티브이에서 남긴 말은 "장애는 불편한 것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였다.


나에게 유일한 장애라고는 시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 정도가 고작이다. 가난하고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랄 때 부모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우울한 생각이 들 때나 큰 일을 치르고 나면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가엾게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사지가 없는 사람이나 손을 움직일 수 없어서  발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피워낸 희망의 메시를 대하면 나 자신의 불행은 너무 작게 여겨진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중에는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모두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 다들 우왕좌왕할 때,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는 존재는 얼마나 고마운가! <불가능은 없다>라는 격려의 말을 붙들고 남은 인생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32013230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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