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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23. 2021

너무도 갑작스러운 선배의 마지막 소식

휴가철을 맞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위해 우체국에도 가고, 여행 다녀온 후에 사용할 물건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을 사러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티브이를 좀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평소에 자주 보는 앱을 뒤적거렸다. 톡도 보고, 중고 거래도 보고, 이메일 확인도 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책을 열었다. 새로 올라온 글들을 하나둘 보며 내려가는데, 삼 년 전 퇴직한 선배의 남편이 선배의 사진과 함께 올린, "이제는 하늘의 천사가 된 나와 반세기를 함께 한 아내..."라고 적힌 글이 있었다. 믿기지 않아서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선배의 부고 소식이 확실했다. 정신이 까마득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선배와 소식을 주고받은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퇴직 후에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난 선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와 다른 동료들이 선배를 위해 마련한 퇴직 기념 식사 자리에서였다. 딱 삼 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끔씩 선배에게 전화로 상담을 받곤 했다. 선배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큰 아들은 우리 남편보다 살짝 나이가 어리다. 그러니까 선배는 사실상 나의 부모님 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배가 그새 어떻게 병을 얻어 돌아가셨는지 믿기지 않아서 선배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작년 십이월 마지막 날이었다. '아~ 벌써 여섯 달이 돼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선배가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지만, 연락할 때마다 괜히 걱정 끼쳐드리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암벽 타기를 하던 칠십 대 할머니를 보고 우리 선배도 분명 암벽 타기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뭐든 도전하고, 남에게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들들, 며느리들과 손자 손녀가 있는 그녀를 한 번도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 칠순 셋! 칠순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는 그녀가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나 보였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에 살면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한국에 여행을 와서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퇴직 기념 식사 이후로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코로나로 모두 발이 묶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팔순의 연세로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칠순 둘의 그녀는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선배는 참 멋있었다. 그 시절 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석사 학위를 두 개나 받았고 클링턴 미국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선배는 동료들과 나눌 줄 알았고, 즐기면서 일할 줄 알았고, 늘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둘은 항상 어디든지 함께 갔다. 선배와 선배의 남편을 보면 아주 멋진 부모를 보는 것처럼 흐뭇했다. '저렇게 멋진 부모, 저렇게 멋진 부부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선배가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다니 믿기질 않았다. 새빨간 거짓말 같았다. 사람이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이치를 왜 외면하며 살았을까? 한국에서 지난 십 년간 사는 동안 세 번째로 맞이 하는 죽음이다. 선배의 죽음이라고 가족의 죽음보다 덜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가족을 잃은 슬픔보다 더 빨리 실감이 났다. 밤에 잠을 쉬이 청할 수가 없었고, 온몸은 몸살이 난 듯 아팠다.


선배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꽃이나 다른 선물 대신 암 치료 연구센터에 기부를 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선배의 유언대로 연구센터에 기부를 하러 갔더니, 선배의 남편이 찬사를 아주 훌륭하게 작성해 두었다. 언제나 침착한 선배의 남편이 무척 걱정이 된다. 항상 둘이서 어디든지 가던 사람들인데, 혼자 남겨진 그가 얼마나 허전할까.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여기저기 선배의 부고를 전했지만, 퇴직한 지 삼 년이 된 선배를 외면하는 동료들에게 새삼 서운하다. 한편으로는 그들은 나만큼 선배를 귀찮게 하지 않아서 아마 빨리 잊을 수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랫동안 일하고 너무 빨리 저 세상으로 가버린 선배의 화려한 삶 속에 감춰진 허망함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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