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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01. 2021

인생은 맛있다!

뒷뜰에서 삼각형 모양의 작은 연못이 바라보이는 남편의 집에 온 지 아직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이곳의 날씨는 추웠다가 더웠다가 폭우가 쏟아졌다가 쨍쨍 햇볕이 내리 쨌다가 통 종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이른 아침에 뜬 해는 밤늦게까지 지지를 않는다. 이곳에 오기까지  택시에 기차에 지하철에 비행기 두 번에 정말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고, 공항으로 남편이 마중을 나와 다행히 또 택시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사실 밀폐된 비행기 안에서 열두 시간 이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는 기내 식사 시간은 공포스러웠다. 기내에서 간식이며 식사며 거의 생략하고, 자고 깨고를 반복해서 다행히 집 나온 지 스물일곱 시간 만에 여행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가격리 의무가 없기 때문에 다음날 장을 보러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식료품 가게 주차장에서부터 마스크를 쓴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이럴 수가... 먼저 출국한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에서 마스크를 안 낀 모습을 보긴 했지만, 마스크 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걸 이곳에 오고 나서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 출국 전에 코비드 테스트도 받았고, 코비드 접종도 다 마쳤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과 근접한 거리에 있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꼭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곳에 온 이후 쇼핑몰에 몇 번 간 것, 장 보러 간 것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보냈다. 낮에는 넷플렉스에서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대부분 영어로 더빙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영어로 자막이 나온다. 영어로 더빙이 된 한국 영화를 보는 게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나름 신기하기도 했다. 낮에 한국 영화를 몇 편 보고 저녁이 되면 불놀이를 했다. 나는 파이어 핏에서 불 피우는 걸 즐기고, 남편은 불꽃놀이하는 걸 좋아한다. 불을 피운 첫날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활활 타는 불에 고기를 바로 올렸더니, 고기가 까맣게 타거나 그을러 버렸다. 다음 날은 햄버거와 핫도그를 구웠는데 장작이 거의 다 타고 숯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은 하필 장작을 태우기 시작한 지 한 삼십 분이 지난 후에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패티오 테이블에 달린 파라솔을 빼어 들고 한참 동안 장작불이 비를 맞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애써 지킨 불 위에서 준비를 한 탓인지 평소에 별로 즐기지 않는 햄버거와 핫도그마저 맛있었다. 그리고 베트남 식료품 가게에서 산 보랏빛 고구마를 불에 구웠더니 정말 속이 예쁜 보라색이었다. 맛은 일반 고구마보다 살짝 더 달았다. 그리고 세 번째 날은 오후까지 비가 내려서 습기 때문인지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다. 집에 있는 종이는 다 찾아서 태우고 석유도 뿌렸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아서 나무 밑에 부러진 가지까지 주워와서 불을 살려야 했다. 그날은 불이 너무 붙지 않아 살짝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직화에 굽는 것보다 숯의 은은하고 지속적인 불에 굽는 것이 음식 재료가 골고루 잘 익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장작불이 준비가 잘 되지 않아 늦어진 저녁 식사시간 때문에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활활 타고 있는 장작 위에 바로 요리를 해야 했다. 그날 메뉴는 치킨 너겟, 핫도그, 고구마와 감자였다. 후식으로 먹어야 할 스모어를 먼저 만들어 에티 타이저를 대신했고, 계란찜을 후식으로 먹었다. 하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실까 하다가 아직 반이나 남은 수박 생각이 나서 수박도 잘라먹었다. 최근 들어 스모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아이들이나 먹으라고 스모어 재료를 샀는데, 이제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스모어는 먼저 불 위에서 큰 말쉬멜로를 구운 후, 그램 크래커 위에 초콜릿을 올리고 그위에 구운 말쉬멜로를 얹어 다시 그램 크래커를 샌드위치처럼 덮어서 만드는 간식이다. 예전에는 이런 설탕 덩어리 음식을  적극적으로 피했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한번 먹어 보고 싶었고, 먹어 봤더니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두려워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럽다. 코비드 예방 주사 접종률이 높은 이곳에서는 코비드 예방 주사 접종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는 곳에서 착용하지 않는 곳으로 온 이후 적응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다 보니,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영화 보기와 요리하기다. 여행 가방에 담아 온 훌라후프를 조립해 두긴 했지만 아직 쓰진 않았다. 읽어야 하는 책도 사 두었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영화관에 갈 때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 보려고 한다. (관심 없는 영화를 보면 꼭 잠이 드는 버릇이 있어서 영화관은 생략하기로 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여독을 풀고, 시차 적응을 하고 등등 모든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식구 수가 두배이다 보니 이제 요리가 필수다. 학교를 마치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 아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밥을 해서 같이 먹고, 아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해서 먹는다. 아침은 집 안에서 저녁은 뒷뜰 패디오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상추에 싸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이 가장 혹적이다. 가재 요리도 도전해 보고 싶다. 식당에서 먹은 케이준 연어도 참 맛있었기에 이 또한 해보고 싶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한두 시간 멍 때리고 놀다가 장작이 숯으로 변할 때쯤 고기를 올려 노릇노릇 구워내 상추에 싸 먹는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히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는다. 하지만 이런 맛있는 인생에도 단점은 있다. 매일 맥주가 땡긴다는 점과, 세네 시간 불장난을 하고 나면 온몸에 베인 연기가 아무리 씻어도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매일 맛있게 먹으니 인생이 즐겁다.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과 도착 이후의 생활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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