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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04. 2021

미국 온 지 일주일 그리고...

네 식구가 모두 모인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집 살림을 할 때와 달라진 건 많이 없다. 아들은 매일 일을 하러 가고, 딸은 혼자 방 안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외출하는 시간은 고작 식료품이나 다른 물건을 살 때뿐이다. 지난 금요일은 장장 여덟 시간을 뒤뜰 패티오에서 보냈다.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남편이 불꽃놀이 준비를 했다. 그날 낮에 남편이 잔디를 깎은 이후로 옆집들과 작은 연못 맞은편 집에서도 잔디를 깎았다.  브로컨 윈도와 반대되는 현상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주 비가 많이 내렸는데 모처럼 비가 안 왔고, 날씨도 무 덥지 않았다. 게다가 독립기념일이 낀 주말이다 보니 사람들이 모두 집단장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날은 옆집에서도 야외 의자와 파이어 피트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불꽃놀이 준비를 하는 동안 옆집 사람들이 하나둘 그 집 패티오에 나와 앉았다. 전에 옆집 아이들이 뒷뜰에서 뛰어노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집 부부와 딸네를 방문 중인 노부부와 옆집 부부의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들은 처음 보았다. 가벼운 손짓을 하는 것 외에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이제 모르는 사람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남편은 옆집 남자와 몇 번 얘기를 나눈 사이인 듯한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멀리 떨어져 가벼운 인사말 정도 건네는 듯 보였다.

 

남편이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 펑하고 터졌다. 불꽃 중에는 제법 큰 것들도 있었다. 일반 불꽃처럼 한 번에 펑 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불꽃이 시리즈처럼 펑펑펑하고 다양한 패턴으로 터졌다. 옆집에 꼬마 남자아이가 좋아라 했다. 그 녀석이 자꾸 남편 이름을 불러 약간 심기가 불편했지만, 나중에 보니 자기 아빠도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옆집 여자도 자기 아빠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둘 다 엄마는 "맘"이라고 불렀다. 왜 일까? 이런 사소한 문화충격을 생각해 보니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한 번은 며칠 전 쇼핑몰 입구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 놓인 벤치에 앉은 사람들 중에 뭔가 부자연스러워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략 일초 정도 내 눈길이 머문 그 사람의 두상은 먹물빛이었다. 그러니까 빡빡 깎은 머리 위와 얼굴 전체에 문신을 한 사람이었다. WTH?!

나는 '저런 극단적인 외모로 어떻게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파머스 마켓 구경 갔을 때, 주차장에 늘어선 부스 속 사람들과 나처럼 구경 나온 다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백인이라는 것이 내심 불편했다. 시장에 가면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인 풍경에 익숙했다가, 그와 반대로 대부분이 백인들인 곳에서 튀는 주변인이 된 미묘한 느낌이 썩 좋진 않았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미국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정착한지도 벌써 십 년이 되었고, 또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게 벌써 이년 전이었다.


그날 남편의 불꽃놀이가 끝난 이후로도 우리는 한참 동안 패티오에 앉아 불멍을 때렸다. 불금을 문자 그대로 불과 함께 보낸 것이다. 장작불이 다 꺼지고 하얗게 재로 변한 건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그렇게 장장 여덟 시간을 불장난을 하고 다음날은 불로부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들이 출근을 한 후, 짧은 외출을 마치고 남편과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나온 한국영화는 거의 다 보았기 때문에 이제 드라마로 갈아탈 때였다.


미드 중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간 것은 Manifest였다. 주인공들이 국내 비행기를 타고 이륙 후로부터 착륙하기까지 몇 시간 동안 지상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주인공의 약혼자는 그녀의 베프와 혼인을 했고, 그녀의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시누이는 딴 남자와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비행기를 탄 오빠와 오빠의 이란성쌍둥이 아들 또한 잃어버린 5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혼란스러워했다. 이 드라마에서 여러 가지 내용을 다루었지만, 그중에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은 주인공의 오빠가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어린아이에서 십 대로 변한 딸과 부녀 관계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었다. 마치 우리 집 남편과 딸이 느끼고 있는 불편함을 보는 듯했다. 나아가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나의 현실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묘하게 있을 법한 그런 상황들이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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