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모두 모인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집 살림을 할 때와 달라진 건 많이 없다. 아들은 매일 일을 하러 가고, 딸은 혼자 방 안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외출하는 시간은 고작 식료품이나 다른 물건을 살 때뿐이다. 지난 금요일은 장장 여덟 시간을 뒤뜰 패티오에서 보냈다.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남편이 불꽃놀이 준비를 했다. 그날 낮에 남편이 잔디를 깎은 이후로 옆집들과 작은 연못 맞은편 집에서도 잔디를 깎았다. 꼭 브로컨 윈도와 반대되는 현상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주 비가 많이 내렸는데 모처럼 비가 안 왔고, 날씨도 너무 덥지 않았다. 게다가 독립기념일이 낀 주말이다 보니 사람들이 모두 집단장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날은 옆집에서도 야외 의자와 파이어 피트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불꽃놀이 준비를 하는 동안 옆집 사람들이 하나둘 그 집 패티오에 나와 앉았다. 전에 옆집 아이들이 뒷뜰에서 뛰어노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옆집 부부와 딸네를 방문 중인 노부부와 옆집 부부의 중학생처럼 보이는 큰아들은 처음 보았다. 가벼운 손짓을 하는 것 외에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이제 모르는 사람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남편은 옆집 남자와 몇 번 얘기를 나눈 사이인 듯한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멀리 떨어져 가벼운 인사말 정도 건네는 듯 보였다.
남편이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 펑하고 터졌다. 불꽃 중에는 제법 큰 것들도 있었다. 일반 불꽃처럼 한 번에 펑 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불꽃이 시리즈처럼 펑펑펑하고 다양한 패턴으로 터졌다. 옆집에 꼬마 남자아이가 좋아라 했다. 그 녀석이 자꾸 남편 이름을 불러 약간 심기가 불편했지만, 나중에 보니 자기 아빠도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옆집 여자도 자기 아빠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둘 다 엄마는 "맘"이라고 불렀다. 왜 일까? 이런 사소한 문화충격을 생각해 보니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한 번은 며칠 전 쇼핑몰 입구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 놓인 벤치에 앉은 사람들 중에 뭔가 부자연스러워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략 일초 정도 내 눈길이 머문 그 사람의 두상은 먹물빛이었다. 그러니까 빡빡 깎은 머리 위와 얼굴 전체에 문신을 한 사람이었다. WTH?!
나는 '저런 극단적인 외모로 어떻게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파머스 마켓 구경 갔을 때, 주차장에 늘어선 부스 속 사람들과 나처럼 구경 나온 다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백인이라는 것이 내심 불편했다. 시장에 가면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인 풍경에 익숙했다가, 그와 반대로 대부분이 백인들인 곳에서 튀는 주변인이 된 미묘한 느낌이 썩 좋진 않았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미국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정착한지도 벌써 십 년이 되었고, 또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게 벌써 이년 전이었다.
그날 남편의 불꽃놀이가 끝난 이후로도 우리는 한참 동안 패티오에 앉아 불멍을 때렸다. 불금을 문자 그대로 불과 함께 보낸 것이다. 장작불이 다 꺼지고 하얗게 재로 변한 건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그렇게 장장 여덟 시간을 불장난을 하고 다음날은 불로부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들이 출근을 한 후, 짧은 외출을 마치고 남편과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나온 한국영화는 거의 다 보았기 때문에 이제 드라마로 갈아탈 때였다.
미드 중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간 것은 Manifest였다. 주인공들이 국내 비행기를 타고 이륙 후로부터 착륙하기까지 몇 시간 동안 지상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여주인공의 약혼자는 그녀의 베프와 혼인을 했고, 그녀의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시누이는 딴 남자와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비행기를 탄 오빠와 오빠의 이란성쌍둥이 아들 또한 잃어버린 5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혼란스러워했다. 이 드라마에서 여러 가지 내용을 다루었지만, 그중에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은 여주인공의 오빠가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어린아이에서 십 대로 변한 딸과 부녀 관계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었다. 마치 우리 집 남편과 딸이 느끼고 있는 불편함을 보는 듯했다. 나아가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나의 현실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묘하게 있을 법한 그런 상황들이 흥미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