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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15. 2021

네 가족이 함께 하는 휴가의 일상

딸과 나는 한 달 전쯤에 여름휴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주 전쯤에 오매불망 그리던 남편과 아들을 만나러 미국으로 왔다.   그때쯤 여름휴가를 받은 남편은 우리와 함께 매일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혼자서 일하러 다니던 아들도 이번 주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받았다. 드디어 네 가족이 모두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휴가가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마는, 아들의 휴가가 나머지 세 사람에 비해 짧다 보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별 하는 일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가 버리고 벌써 목요일 아침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정말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화요일에는 아들의 치과 진료가 있어서 남편이 새벽에 일어나 아들과 함께 치과병원에 다녀왔다. 수요일에는 아들이 교회 친구들과 다른 지역에 있는 놀이 공원에 다녀왔다. 남은 가족은 게으른 몸을 이끌고 나가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외식을 즐기는 남편과 달리 복잡한 식당에 가는 걸 무서워하는 나는 식당 바깥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웨이트리스가 친절하게 주문을 받고 음료와 음식을 내어 와서 그나마 별 의미 없고 맛도 없는 외식이 참을만했다. 외식이 끝나고 게으른 생존체가 나머지 십여 일간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식료품 등등의 쇼핑을 하러 갔다. 미리 적어 온 리스트 오른쪽의 월마트 쇼핑을 먼저 했다. 매장 안을 구석구석 다 살피고 물건들을 잔뜩 산 후, 셀프 체크 아웃에서 계산을 다 하고 남편이 자신의 카드로 긁었다. 150불가량이 나온 듯했다. 그다음에는 쇼핑 리스트 왼쪽에 있는 아시안 마켓과 크로거에 들렀다. 먼저 크로거에서 양념에 재어 둔 생선과 고기를 샀다. 가재와 연어 꼬치, 치킨 꼬치와 칠면조 고기 패디 등을 샀다. 이번에는 내 카드를 긁었다. 자세히 확인하진 않았지만 70불은 넘지 않았다. 그다음 아시안 마켓으로 가서 삼겹살 네 팩을 먼저 샀다. 그리고 고추장과 만두, 찹쌀떡 아이스크림 등등을 샀다. 삼겹살과 함께 먹을 흰쌀밥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 집에는 마땅한 밥통도 쌀도 없으니 밥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휴가 중에 밥도 안 해 먹는 불량 가족이다. 이번에도 계산대에서 내 카드를 긁었다.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온 가족이 같이 있을 때 남편에게만 식비와 생활비 등을  부담하게 하기가 어색하다. 이곳에서는 80불가량 나왔다. 이번 장에서는 둘이 합쳐 300불을 쓴 것이다. 일주일이나 갈지 모르겠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처음 일주일 간은 거의 매일 뒷뜰 패티오에서 장작불을 피우며 놀았다. 그다음 주에는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다. 이번 주에는 그다지 한 일이 없다. 며칠 있으면 아들의 휴가가 끝난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남편과 아이들은 놀이 공원에 가고 싶어 한다. 땡볕에 사람들 북적이는 놀이 공원에서 온종일 걸어 다니는 걸 허약한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국 올 때마다 들렀던 레드 랍스터라는 식당도 올해는 가고 싶지 않다. 이년 전 그곳에 갔을 때 종업원 중 한 명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팬데믹 중에 그곳에 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월마트에서 신학기 학료품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온라인 수업이 주를 이루면 오프라인에서 쓰는 물건들이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른 주에 있는 집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하와이나 플로리다가 좋을 것 같다. 날씨가 따뜻하니까. 해변가면 더 좋을 것 같다. 땅은 최소한 1 에이커는 되었으면 좋겠다. 수영장이 딸린 집이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넓은 땅에 온갖 과수가 심어진 곳이면 한다. 하루 종일 자동차를 타고 도착해서 다음날 집을 보고 그다음 날 또 하루 종일 자동차를 타고 돌아오는 코스이면 최소한 이박삼일은 걸릴 것이다. 집을 사게 된다면 최소 하루가 더 걸릴 수도 있다. 아들이 다시 출근하는 날이 언제였더라... 미친 생각이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연고도 없는 곳에 덜렁 집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아직 새로 장만한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아야 하고 말이다. 남편은 요새 종종 혼술을 한다. 정확하게 뭘 얼마나 마시는지는 모르겠다. 대충 음료수에 럼 같은 걸 섞어 마시는 모양인데, 뭐 정해진 때에 정해진 양을 마시는 것 같지는 않다. 어제는 혼술 후에 기분이 좋았는지, 집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충동적이며, 행동파다. 직진녀와 직진남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일주일 중 이제 대략 반 정도 남았다. 놀이 공원을 가게 될지 아니면 은퇴 후 살 곳을 찾아 머나먼 로드트립을 떠나게 될지 모르겠다. 해는 중천을 향해 가는데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옆에서 코를 골며 편안하게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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