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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16. 2021

외출 한 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아침은 대충 시리얼로 때우고, 늦게 일어난 가족을 위해 점심 준비를 했다. 상추를 씻고, 여러 가지 야채를 다듬어 테이블에 세팅을 하고 삼겹살을 구우러 밖에 나갔을 때만 해도 햇볕이 내려 꽂혔다. 남편이 야외 테이블을 옮겨다가 파라솔이 내 머리 위를 가리도록 했지만 여전히 햇볕은 고기를 굽고 있는 오른쪽 팔을 무자비하게 태우고 있었다. 고기를 한 가득 구워, 멕시컨 칩과 살사를 넣는 큰 접시에 빙 둘러 담고 중간에 구운 마늘을 담았다. 점심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졌지만, 삼겹살을 하도 자주 먹어서 질렸는지 딸은 몇 술 뜨는  마는  하더니 금방 일어났고, 남편은 먹다 말고 놀이 공원 예약을 한다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아들도 먹는 속도가 평소보다 더디게 보였다. 나에게는 점심이지만 식구들에게는 브런치인 삼겹살 구이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웠나 보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뒤뜰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교회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꽃단장을 했다. 사실 꽃단장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샤워를 한 후 옷을 입고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는 정도라고 해야겠다. 남편집으로 오면서 입기 편한 옷만 몇 개 싸들고 왔기 때문에 반바지와 찢어진 청바지 중에 어떤 게 무난할까 고민하다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외출 준비를 마쳤을 때는 다섯 시 반 정도가 되었고, 교회에 푸드 트럭이 오기로 한 것은 6시경이었다. 멀뚱하게 앉아 기다리기 뭐 해서 교회에 조금 일찍 도착하기로 하고 우리 가족은 뒤뜰로 나갔다. 몇 주 전부터 다리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거위 한 마리가 뒤뜰 나무 아래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남편이 야생동물 구조대에 연락을 했지만, 구조대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을 받았다. 다리 다친 거위는 항상 연못 건너편 집 뜰에 있더니 남편집 뜰로 온 것은 처음이다. 우리를 경계하는 듯 또는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는 거위를 지나 도로에 이르니 꽤 넓은 4차선이었다. 각각 2차선으로 나뉜 중간에 중앙 분리대로 된 시멘트 구조물이 있어서 한 번에 2차선을 건너고 시멘트 구조물에서 또 2차선을 건너야 했다. 딱히 건널목이 없는 길이다 보니 그 길을 건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4차선을 건너 교회 뒤뜰에 이르니 바운시 하우스 2대와 아이스크림 트럭 한 대 그리고 동그랗게 모여있는 인파들 뒤로 일렬로 정렬된 음식 배급대가 보였다. 알고 보니 미리 예약해 뒀던 푸드 트럭이 지난밤 갑자기 취소를 하는 바람에 교회 사람들이 급하게 햄버거와 핫도그를 준비했단다. 낯선 사람들 속에 멀뚱 거리고 있는데 키가 작은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2년 전 한 두 번 일요일 예배를 본 게 고작인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곳 목사님의 부인이었다. (이런 전문기술을 대할 때마다 사뭇 감탄스럽다.) 그리고 청소년부 목사님이 와서 전날 아들이 청소년들과 갔던 여행에서 성실하게 도와줬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아들을 잘 지도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그냥 목으로 삼키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칭찬에 참 인색하다. 그래서 줄곧 칭찬할 또는 감사할 기회를 놓치고 나면 후회를 한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핫도그를 만들어 먹고 저만치에 놓인 게임하는 곳으로 갔다. 콘홀 게임이라고 잔디밭에서 하는 놀이로 양쪽에 경사진 보드를 놓고 옥수수 알갱이를 가득 담은 주머니를 보드에 난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다. 처음 해 보는 게임이라 멀리서 보드에 난 구멍 속으로 옥수수 주머니를 던져 넣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내가 던진 옥수수 주머니가 자꾸 맞은편 보드 옆에 서 있는 딸을 맞추니, 딸이 짜증을 내었다: "나는 타깃이 아니라고요!"

https://en.m.wikipedia.org/wiki/Cornhole


한참 동안 콘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풍이 불어 바운시 하우스가 거센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날아갈 듯 심하게 요동치는 거대한 바운시 하우스를 누르겠다고 아들과 몇몇 어른들이 달려갔다. 나도 달려가 한쪽 모퉁이를 잡고 있는데 급기야 빗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바운시 하우스의 공기를 다 빼내기도 전에 어느새 비는 폭우로 변했다. 남편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빨리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고 했지만, 야외 시설물을 분주히 치우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마침 야외 테이블을 옮기고 있는 사람을 도와 같이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다 몰려드니 교회 입구는 만원이었다. 폭우를 뚫고 혼자 집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실내에서 기다린 지 십 분도 안되어 빗물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다시 4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돌아가는 길은 중앙 분리대에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길을 건너는 것이 더 어려웠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우리 먼저 건너라고 서서 기다려 주는 덕분에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횡단보도에서조차 차 먼저 보내야 하는 한국의 사정과는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뜰을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리 다친 거위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 무사히 도착해 시간을 확인하니 여섯 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겨우 한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4차선 도로를 두 번이나 건너고, 낯선 이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핫도그를 먹고, 콘홀 게임을 하고, 긴급 대피를 했다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이곳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섭씨 30도를 웃돌다가 20도로 내려갔다가 햇볕이 쨍쨍 내리 다가 폭우가 왔다가 저녁에는 둥 번개도 독립기념일 폭죽처럼 빵빵 터졌다. 단조로운 일상과는 상반되는 변화무쌍한 날씨 덕분에 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고 하면 새하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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