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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25. 2021

작가 소개글을 바꾸고

유년기 가난이 나에게 미친 영향

오래간만에 프로파일에 나온 작가 소개글을 바꿨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첫 단어를 흙수저로 정했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지금은 고만고만하게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남편과 나는 모두 전문직에 종사 중이고, 지금 당장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대출 없이 괜찮은 집 하나는 장만할 수 있고, 아이들 대학 정도는 큰 걱정거리 없이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남편은 앞으로 최소 4~5년 정도는 일을 해야 생활비를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의 잔혹함에 대해 조기교육을 받은 내가 돈 잘 주는 직장을 그만 둘 리는 없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치사하고 조금 더럽고 조금 아니꼬운 일들이 많게는 하루에 수차례 적게는 며칠에 한 번 정도 일어나겠지만, 힘들게 이룬 나의 지극히 평범한 성공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을 것이다. 가난하게 보낸 유년기의 기억이 DNA처럼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


지금 나의 삶은 흙수저와 거리가 아주 멀다. 우리 집 식비는 보통 사람의 월급과 맞먹을 정도이고, 가족 중에 누구도 돈이 없어서 무엇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단지 다른 이유 때문에 하지 않거나 절실하게 하고픈 이유가 없어서 안 하는 것뿐이다. 그런 내가 흙수저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인터넷에서 흙수저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검색 결과에 나온 것 중에서 흙수저 집안 특징이라는 글을 읽어 보았다.

https://m.dcinside.com/board/sc/525830


글을 읽으면서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의 부모님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열된 특징  중에 심지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글을 읽은 후 흙수저에 대한 글 중에  더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흙수저의 생존방법에 관한 글이다. 표현이 다소 비속하다고 미리  알리고 싶다.

https://m.dcinside.com/board/hit/13092


나는 이제 그때를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난에서 멀리 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떠나온 가난이 나를 완전히 떠났을까? 가난이라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 방식과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가끔은 가난했던 기억 때문에, 가끔은 가난했던 과거를 잊으려고, 또 가끔은 가난과의 재회를  피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결국 가난은 아직도 나의 삶을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난은 누구의 잘못인가? 본인 탓인가? 부모 탓인가? 나라 탓인가? 아니면 희생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미궁의 사건 같은 건가? 가난이 누구의 잘못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가난은 지독히 아프다는 것과 절대 가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다.


나는 본인에게 인색하게 굴 때가 많다. (단, 먹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삶에 항상 진심인 편이다.) 나를 치장하기 위해 브랜드 제품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제품들이 나의 선택을 받으면 나름 특별하게 거듭난다는 착각 속에서 잘 살고 있다. 그냥 나 자신이 곧 브랜드라고 믿는 거다. (이런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의 고집스러움은 비단 외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외면은 나의 내면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부드럽다. 내면의 자아는 갑옷을 두른 전투병과 가깝고, 외면의 자아는 그래도 직장 생활하는 평범한 중년의 여인이니 말이다.


가끔씩 갑옷 두른 전투병이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 갇혀 있는 생각들을 토해내기 위해 글을 쓴다.  주변의 일상을 내 방식대로 해석한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다. 어쩌면 아직도 가난과 싸우고 있는 내면 자아와의 대화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언제 다시 작가 소개글을 바꾸게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떻게 나를 표현하더라도 나는 내면 자아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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