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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07. 2021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난 한 달 반 동안 다섯 번의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다. 이제 결승선이 눈앞에 보인다. 휴우~~~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 이전에 세운 계획 중의 하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 지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나보다 2주 전에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내가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즈음 자가격리가 끝났고, 내가 자가격리를 마치고 나면 잠시 한국에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올해 그녀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있어서 축하해 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감염자 숫자가 전국적으로 늘고 있고, 그녀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 모두 예외가 아니다 보니, 아쉽지만 올해의 만남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보다는 아마도 한국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였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의학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대학을 다니는 중이었고, 당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그녀가 사는 곳은 서부였고, 내가 있던 곳은 중부라서 굴을 볼 수는 없었고, 전화통화를 한번 한 것 이외에는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나에게 의학 계통 공부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었고, 나는 그때 육아를 하며 공부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시기라서 그녀에게 공부 기간이 짧은 전공을 추천했었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눈 후에 간호학으로 전공을 정해서, 미국에서 간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지역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잠시 화제를 돌려서 최근 브런치에서 자주 접한 글 중에 유독 실패에 관한 글이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중에 몇몇은 직접 읽기도 했다. 결혼 실패 (국제결혼 포함), 이민 실패, 사업 실패, 귀촌 실패, 취업 실패 등등. 그리고 퇴사에 관한 도 자주 보았다. 그런 글들을 접하면서 아직 그 길을 안 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남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거실에 걸린 액자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다: When one door closes, another opens!


https://images.app.goo.gl/dSR3r4Zf8ATW2uZo7

이 인용 글귀는 사실 더 길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데, 우리는 그 닫힌 문을 오래도록 유감스럽게 바라보느라고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알아보지 못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발자취를 밟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실패를 더 자세하게 돌아보기 위해 실패담을 쓴다. 나쁜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점이 있고, 또 글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치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가 타인의 실패에 대한 간접 경험만으로 그 길을 미리 포기해 버린다면 그건 그 사람의 간절함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팔랑귀의 어리석음일까?


(또다시 잠시 화제를 바꿔서) 내가 근무하는 빌딩에는 지난 십 년간 박사가 네 명 있었다. 학력이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학력이 너무 높으면 숙청 대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건 그 네 명 중의 세 명이 줄줄이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본 이후다. 사실 조직의 입장으로 볼 때야 학력이 높아서 임금을 많이 줘야 하지만 그만큼의 능률을 올리지 못하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슬프기는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젊고 기본 학력을 갖고 있으며 그 분야의 최소 인금만 줘도 열정을 쏟아 일하는 사람들이, 나이 들고 임금을 많이 받아가지만 열정도 없고 능률도 떨어지는 사람들보다는 인력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더 높은 학위에 대한 갈망은 없다. 내가 처한 환경이 다르다면 아마도 나는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학력이 곧 성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통상적으로 고학력을 성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이번 달 만나기로 했다가 코시라는 현실로 인해 못 만나게 된 지인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겠다. 나와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그녀는 내가 석사 학위를 받고 난 후에 간호 계통 석사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어 아예 석사와 박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코스로 진입해서 올해 드디어 간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공부하는 동안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고, 두 해 전 이맘때 그녀를 처음 만나서 열공 중인 그녀를 응원해 주기도 했다. 그녀는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시작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케이스라 그녀가 학위를 마치는 과정이 곧 나의 일인 것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이십 년 전쯤 나와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간호학 박사가 아닌 다른 전공의 의학박사가 되어 있을까? 나와의 인연이 그녀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녀는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성공을 그렸다는 인상적이고 높이 사고 싶다.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 많이 들었던 <정보의 홍수>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정보의 포화 속에서 매일 씨름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무수한 정보 중에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 어떤 정보가 신빙성 있고 효율적인가?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브런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접하게 는 것은 참 유익한 일이다. 특정인을 발품 팔고 찾아가 어렵게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쓴 글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성공을 말하고, 어떤 이는 실패를 말한다. 누군가의 성공을 대할 때 우리는 그 방법이 그에게 통했겠지라고 국한해서 생각하듯이, 누군가의 실패를 대할 때 역시 그 방법이 그에게는 안 통했겠지라고 한정 지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실패와 성공에 이르는 길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에 따라 다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올해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인을 직접 얼굴 보고 축하해 줄 수는 없지만, 다음에 그녀를 꼭 만나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나와 연배나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인지 친구처럼 여겨지는 그녀이기에 그녀가 이번 성공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더 많은 성공을 이루어내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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