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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01. 2021

진정한 휴가는 나의 집에서

버스에서 내려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다리 밑으로 갔다. 차는 이미 열다섯 살의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을 땡볕에 버려졌지만 돌아온 우리를 위해 충직하게 시동을 걸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여행가방을 끌고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건물 뒤쪽으로 갔더니 바로 문이 열렸다. 가끔씩 빌딩 앞에서 딸과 내가 빌딩 출입 키를 대기도 전에 문이 열리곤 했었지만 5주간의 공백에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니 꼭 누군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키 큰 나무 세 그루였다. 국에서 한국 시간에 맞춰 오로지 앱에만 의존해서 중고거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 사람 키만한 화분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 딸의 손을 빌려야 했다. 딸이 일 년 새 더 성숙했는지, 아니면 고집쟁이 엄마에게 두 손 든 건지 이번에는 불평 하나 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작년 여름에는 장독대를 수집하느라 딸을 괴롭혔었다.) 제일 큰 나무는 에어컨 옆에 세우고, 두 번째 나무는 거실 창가 에어컨 맞은편에 두었다. 그리고 그중 키가  제일 작지만, 연초록 잎이 몸통 위로 사랑스럽게 뻗은 나무 밑에 예쁜 덩굴 식물이 있는 화분은 어디에 둘까 고민을 하다가... 식탁 옆에 두었다. (포도나무 옆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누가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나무 밑에서 밥 먹는 상상을 했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저녁 시간이 다 돼서야 집에 왔건만 여행 전에 남겨 둔 리스트를 보고 집 정리를 시작했다. 환기를 위해 온 집안 창문을 열고, 정수기를 다시 연결하고, 도시가스 밸브를 열고, 온수 샤워를 위해 보일러 전원을 켜고, 여행 가방에서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저녁을 시키고... 거의 일주일을 잠도 제대로 못 잔 내 몸에서 힘이 남았을 리가 없다. 다음 날 몸은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나무 옆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마치 최고의 휴가지에서 호화로운 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십억짜리 전망을 내다보았다. (공식 가격이라기보다는 상당히 주관적인 가격이다.) 창가에 각각 세워둔 나무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무에게 각각 이름을 붙였다. 식탁 옆에 있는 나무는 "피크닉", 에어컨 옆의 큰 나무는 "바캉스", 그리고 창가 끝에 있는 나무는 "피스 (=평화)"다. 나무들을 바라볼 때마다 힐링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화분을 가져다준 기사님께 미안해서 운반비에 수고비까지 넉넉하게 얹어 드린 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진정한 휴가는 이렇게 집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남아 있는 격리기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에서 즐기고 있는 나는 팬데믹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코로나 감염자 숫자가 많이 높아져서 다소 걱정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은 휴가를 집안에서 맘껏 휴식할 것이다. 한국으로 오기 직전에 America's Got Talent에서 상체가 비쩍 마르고 머리가 유난히 짧은 어떤 젊은 여성이 이미 여러 곳에 암이 전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담담한 자신의 심정을 "It's okay!"라는 노래로 만들어 불러 Simon에게 골든벨을 받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CZJvBfoHDk0

노래를 부른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You can't wait until things are not bad any more in life to decide to be happy!"


이제 반 이상이 지나 버린 올해는 나에게 참으로 고단한 한 해였다. 층간소음에 시달리다 못해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하느라 너무 바쁘게 반년을 보냈다. 일 년 반이나 못 만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코로나 테스트를 다섯 번이나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 열악한 격리시설에서 삼일 밤낮을 지낸 후에야 겨우 집에 올 수 있었고, 아직 자가격리 중이며 마지막 코로나 테스트가 남아 있다. 게다가 자가격리가 끝나면 곧 출근을 한다. 그렇지만 나도 "It's okay!"라고 속으로 외치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은 나의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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