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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30. 2021

다시 잠 못 이루는 한국으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확하게 며칠 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날 밤, 되도록 비행시간에 가깝게 샤워를 하기 위해 늦게까지 잠을 안 잔 것이 시초였다. 샤워를 마치고 12시에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한국으로 가는 것이 설레었는지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깜빡 잠이 든 것은 채 30분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벽 세 시에 공항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속마음은 사실 그다지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왕복 여행을 하려면 총 다섯 번의 코로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미리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단한 여행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날 밤에 나는 정말 푹 잘 잤었다. 미국으로 가는 13시간의 비행 중에도 나는 줄곧 잤다. 심지어 미국에서 2시간 정도의 국내행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잤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새벽에 탄 국내행 비행기 속에서는 그래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비행기를 갈아타는 중에 시간이 촉박할까 봐 일부러 새벽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국제선을 탈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착륙 터미널과 이륙 터미널이 같은 곳이었고 심지어 게이트도 바로 붙어 있었다.) 공항 속의 작은 식당에서 맛도 없는 아침을 먹고, 거지 같은 서비스를 받고도 팁까지 내고 나온 후 게이트에서 한참을 기다려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나는 지난번 미국행 비행기에서처럼 잘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날 밤 잠을 못 잤으니 당연히 잘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13시간이 넘는 비행 속에서 한두 시간 정도의 쪽잠을 한 두 번 정도 잔 것 외에 단잠은 오지 않았다. 다리의 혈액 순환을 위해서 종종 짧은 복도를 이용해 좌석과 화장실을 오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장거리 비행 중에 잠을 잘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눈의 피로를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외면하고 있던 스크린을 눌러서 영화를 검색했다. 몇 번 들어 보았던 <미나리>를 보기로 했다. 미국으로 이민한 어느 부부의 고단한 미국 정착기와 이민 이세 (=아들)와 이민 일세의 부모(=외할머니)가 겪는 갈등 등을 그린 잔잔한 영화였다. 영화라기보다는 꼭 고전 소설이나 다큐멘터리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심포니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라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싶었다. 기내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한국 항공사에서는 예전에 몇 번 맛있는 기내식 식사를 한 것 같은데, 다른 항공사에서 주는 한국 음식은 그런 맛이 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힘겹게 잠이 들었는데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잠이 깬 후 피곤한 몸을 끌고 가서 문을 열었더니, 화장실 샤워기 물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었다. 비행기를 탄 후 시간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려서 몇 시나 되었나 하고 스마트 폰을 꺼내 보니 9시였다. 밖이 깜깜하니 분명 저녁일 거라고 생각하고 일꾼들이 뭔가 해결책을 찾길 바랬다. 그런데 "3층에만 그런 가봐!"라는 말이 들리더니 사람들이 떠나는 기척이 났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난 사람들은 문까지 아예 열어 놓고 갔길래, 다시 올 건가 생각하고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나의 단잠을 깨워 놓고 떠났고, 나는 격리 시설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 밤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한국행 비행기로 한 주를 시작한 후 주말이 다 되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 잠을 잘 수 없었다. 코로나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며 보낸 지난 며칠간 방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이동하는 열 발자국이 가장 원거리 여행이었다. 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티브이도 보고 (이곳 격리 시설에는 티브이가 없다.), 본격적으로 실내정원을 만들어야겠다. 남은 격리 기간은 집 안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쁘다. 무엇보다도 편안한 내 침대에서 숙면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의 찬물 샤워는 사양한다.)


홈 스윗 홈!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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