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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5. 2021

친구를 찾습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려고 남편의 팔에 휘감긴 내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니 잠결에 남편이 나를 서서히 놓아주었다. 화장실을 쓰고 나서 시간을 보니 이제 겨우 새벽 다섯 시. 평소 같았으면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갔을 시간인데다 주말이며 게다가 휴가 중이라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일도 없는데 안방 문을 열고 나와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았다. 그리고 얼굴 책으로 이름 하나를 검색했다. 원민아.


꿈속에서 본 그녀는 여전히 젊었다. 나이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것으로 보였고 과외를 가르치는 아이가 말썽을 피우는지 엄청 힘들어 보였다. 우리 집으로 놀러 온 그녀는 스트레스 때문에 안면홍조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더 이상 잠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친구가 너무 그리워졌다. 그 친구는 고1 때 내 단짝 친구였다. 이후 친구는 이과를 선택하면서 나와는 다른 반이 되었고, 최근 이과 졸업생들을 통해 친구를 수소문해 본 적도 있지만 여고 동창 중에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런치에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기가 쑥스럽지만,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가능성도 희박하고 너무 엉뚱한 방법이지만 이곳에 글을 써 본다.


친구는 경기도에서 여고를 나와 삼수 끝에 서울(에 있는) 여대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외국인 회사에서 잠시 근무를 했고 삼성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를 낳은 것까지는 알고 있다.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거의 20년 전 친구가 결혼해서 대전에 있는 35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친구가 35평 신혼집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해서였다.)


나와 내 친구는 참 달랐다. 아니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친구는 세속적인 것에 조기교육을 받은 영재 같은 느낌이고, 나는 세속화가 아주 천천히 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친구가 가끔씩 너무 궁금하고 그립다. 친구의 기억 속에서 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일지도 모른다.


여고시절 공부 스트레스로 약간 부운 듯했던 그녀는 대학을 다닐 때는 몸 관리도 철저히 해서 하얀 피부가 더 돋보였었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쯤 대기업 임원직에 있는 남편과 팔학군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다면) 기르고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아니면 주재원 남편을 따라 외국 어딘가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쩐지 그녀는 뭔가 빛깔나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그런 것들이다. 여대. 외국인 회사. 삼성. 35평 아파트. 적어도 20년 전 그녀는 그랬다. 2020년대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거기에 뭔가 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을 것 같다. 강남 사는 여자? SKY 자녀? 유학생 자녀? 70평 아파트? 부동산 큰 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친구를 싫어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솔직히 내 친구가 선택한 삶과 나의 삶이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친구가 사랑스럽고, 그립고, 가끔씩 참 궁금하고 보고 싶다. 친구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가끔씩 궁금하기나 할까?


내가 친구와 단짝이었던 시절은 겨우 일 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을 주고받은 기간은 겨우 십 년 정도였다. 그것도 아주 가끔씩. 그래도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사람 (아, 우리 총각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했었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같은 목표가 있었고, (세속화 학습 능력이 떨어졌던 나에게) 화려한 삶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친구에게는 젊고 생활력 강한 엄마와 세련된 삶을 몸소 보여주는 사촌언니가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몇 시간 정도를 친구가 보여주는 신세계에 매료돼서 귀담아듣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얘기를 전하는 친구를 동경도 아닌 경멸도 아닌 약간은 몽환적인 그런 느낌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나와 너무 다른 (아니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가 무척 그립다. 잊히지 않는 그 이름. 원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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