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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6. 2021

기다리는 손님은 오지 않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이다. 사실 아이라고 하기에는 둘 다 너무 커 버렸다. 대학교 휴학 중인 첫째와 고등학생인 둘째는 우리 부부가 같이 이주 휴가를 받은 기간 동안에도 계속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오가 다 돼 갈 무렵에 강제로 깨워 배가 고프지 않냐고 확인을 하거나, '배고프면 알아서 일어나겠지' 하고 내버려 두면 오후 세네 시가 다 되어서야 방문을 열고 나와 배가 고프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부지런한 편인데 애들은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가끔씩 유전자가 세대를 건너서 발현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럴까?


남편과 나 또한 다 큰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기에는 둘 다 너무 고단하다. 이번 휴가에도 평소에 직장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산더미처럼 마음에 담아 왔다. 나의 경우에는 공휴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언젠가는 다 해결해야 할 일이라 한 번에 세네 시간씩 짬을 내서 이것저것 처리하고 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러니 다 큰 아이들이 저렇게 게으름을 부리는 것을 견디자면 사실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최근 코로나 추가 접종 이후에 몸 이곳저곳에서 경보등이 울려서 며칠 전 타 지역에 있는 병원을 다녀왔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또 다른 검사를 예약하기 위해 간 것인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병원 진료를 마치고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친구와 친구 가족을 만나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중에 친구의 남편이 우리가 사는 도시로 출장을 올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친구 남편이 직장 동료와 함께 호텔에 머무는 동안 친구의 두 아이를 우리 집에 머물게 하라고 제안을 했다. 네 식구가 휴가 중인 우리 집과는 달리, 부모가 일을 하는 중이라 심심하게 방학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아이들이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친구의 아이들도 고등학생들이라 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크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우리 부부와 인연이 깊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내 친구와 남편의 친구로 우리 부부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나서 몇 년간의 교제 끝에 결혼을 했다. 두 집의 아이들이 어릴 적 두 가족이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그동안 서로 사는 곳이 너무 멀어서 가까이서 자주 얼굴 보며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 부부를 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때문에 맺어진 인연이라는 그런 무게감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친구의 아이들 역시 남 같이 여겨지지는 않는다. 친구의 아이들이 뭐 그런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초대에 흔쾌히 응해 줘서 내심 기뻤다.


친구의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이박 삼일을 머무는 동안 여섯 명이서 여기저기 갈 곳, 할 것 그리고 먹을 것을 기획했다. 심지어 같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식재료까지 주문했다. 주말에는 집 정리까지 다 하려고 창고에 넣어 둔 상자들까지 꺼내 이것저것 정리를 하느라 나름 바빴다. 그러다가 저녁 시간이 다 돼서야 낮에 친구에게서 온 문자를 보았다:


요새 코로나 확진자 수가 자꾸 늘어나서 남편 출장이 취소되고 말았어. 그래서 애들도 못 내려갈 것 같아. 미안해!
 

버스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그것도 코시국에 아이들에게 굳이 오라고 하기도 뭐 하고 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날씨까지 엄청 추워져서 며칠째 하루 종일 영하의 기온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밖에 돌아다니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 하지만 냉장고 가득 사다 둔 음식재료가 문제다. 지난밤에는 남편과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다. 오늘은 점심으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재료가 너무 많다. 친구의 아이들이 오면 스테이크를 올려서 짜파구리도 만들고 싶었고, 만둣국도 해 먹고 싶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여전히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게다가 이것저것 잘 먹지도 않는다. 손님이 온다고 사놓은 식재료는 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나 혼자 두고두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녕 이번 겨울에는 계속 만둣국, 떡볶이, 순부부 찌개에  짜파구리를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다른 식재료를 아직 주문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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