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지역 강 살리기

○○○ 다리에 어떻게 가나요?

by 별똥꽃

오늘 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이다. 어제 시골 고향에 다녀오느라 고생한 남편에게 아침에 또 운전을 시켰다. 싫다고는 못하고, 서둘러 가고 싶지는 않은 남편이 <지역 강 살리기> 환경 정화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나와 아이를 데려다 주기로 해 놓고는 꾸물거렸다. GPS에 주소를 치니 도착 시간이 집결 시간이었다. 집결 장소는 ○○○ 다리라고 나와 있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길을 잘 못 들어 도착 예정 시간보다 일 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집결 장소, 즉 ○○○ 다리를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메모해둔 연락처로 전화를 해야 했다. 우리가 주차한 곳에서 다리는 상당히 멀었다. 늦게 데려다준 남편과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집결 장소에 도착했는데 멀뚱이 서 있는 수많은 인파들 앞에 테이블이 보여 다가갔다. 자원 봉사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 서명을 하고 나니, 그곳 진행 위원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환경 보호 조끼를 챙겨 입고 온 나와 아이를 보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사실은 조끼뿐만이 아니라 쓰레기 집개에 면장갑까지 모두 채비를 해 갔다. 집개와 면장갑이 담긴 카트 속에는 2리터짜리 물병도 있었다. 그런 우리를 신기해하더니, 조끼를 갈아입어라, 집개와 장갑을 나눠 주는 걸로 쓰라 등 계속 귀찮게 굴었다. 아직도 전염병이 끝나지 않은 시기에 누가 입었는지, 세척을 했는지 알 수도 없는 조끼를 억지로 입으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필요한 물품을 따로 챙겨 오는 게 귀찮았으면 처음부터 아예 가지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창피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축구 경기에 가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해요?" 그리고는 스스로 대답했다: "속한 팀 축구복을 입어야죠!"

거기다가 사족까지 붙였다: "우리가 밝은 초록색 조끼를 입고 있으니까 무리 속에서 틔어 보이잖아요!"

아이는 그게 싫었나 보다. 사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경미화 작업을 하기로 했으면 강가 쓰레기만 열심히 치우면 되지, 그곳 팀 조끼를 입고 기념 촬영하는 것이 뭐가 중요한지 말이다.


모집 시간 후 50분이 지나서야 시민단체장이 나와서 일장 연설을 했다. 아이는 혹시나 봉사 시간이 필요한 대학에 진학해야 할 것을 대비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고, 나는 그런 아이를 응원하며 지역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지만, 남편은 그런 우리를 따라왔다가 얼떨결에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반 강제로 남편의 이름을 봉사단 명단에 집어넣게 한 후에, 그 시민 단체장이 남편이 반바지를 입고 왔다며 연설 중에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앉아서 쉬든지 그냥 가라고도 하고, 아프거나 다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 자원 봉사자가 최근 다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에 다쳐서 보험 문제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인 지 한 시간만에 강 상류로 이동해서 스쿠버 다이버들이 강 안에서 해초 제거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자원 봉사자들은 또 넋 놓고 바라보기를 반 시간 가량 했다. 강 상류에 쓰레기도 별로 없고, 고작해야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몇 개 있었다. 도저히 한 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아까 모였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쓰레기를 주워 담다가 아이가 벌레 같은 거에 물렸다. 제법 큰 벌레가 문 것 같은데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아이를 강 위 휴식 장소에 데려다 놓고 벌레 물린 데 대고 있을 얼음과 목마를 때 마시라고 음료수도 사 주었다고 한다. 지역 강 환경미화 작업에 꼭 참여하고 싶은 나와 달리 아이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나 보다. 아이가 훨씬 어릴 때도 다른 <지역 강 살리기> 환경미화 작업에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이는 그리 신나 하지는 않았다. 억지로 하러 온 자원봉사에 벌레까지 물렸으니 일 안 할 핑계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그런 애를 대신해서 봉사활동 신청도 하지 않은 남편이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핀잔을 받았으면 나 같았으면 벌써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도 아이지만 다른 젊은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근처에 있던 직장인 초년생이거나 구직 중으로 보이는 세 명은 봉사활동 내내 셋이서 수다만 떨었다. 장소를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강 상류로 온 지 한 시간 정도 지나고 스쿠버 다이버들이 해초를 건지던 장소에 사람들을 다시 집합시키길래 나는 또 기념사진을 찍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민단체장이 또 일장연설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번 봉사 활동은 어쩐지 땡볕에 가만히 서 있는 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후에는 다른 장소로 쓰레기를 줍기 위해 크게 두 팀으로 나뉘었다. 우리가 왔던 길 반대 방향으로 가는 팀에 합류해서 쓰레기를 제대로 주운 건 한 반시간 가량 밖에 되지 않았다. 시민단체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인솔해 간 이후에는 조끼 등 물품을 반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리고는 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나눠 주고 얇은 일회용 마스크 한 통도 나누어 주었다. 필요 없다는 남편에게도 주최 측 사람 중 한 명이 다가와 간식과 마스크를 주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림 속에서 보낸 환경미화 자원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반팔 티셔츠 밑으로 시뻘겋게 탄 양팔과 집에 가져온 마스크 상자를 보면 우리가 분명 <지역 강 살리기>에 간 것은 맞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처럼 강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제거하지는 못했다. 올해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첫 번째 활동부터 느낀 점들이 있다. 아마도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가 봉사 활동이라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1. 봉사활동의 종류를 막론하고 자발성을 장려하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꺼려하고, 주체 측에서는 참여자들이 침묵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길 바란다.

2. 주체 측도 참여자도 봉사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낮다. 주체 측은 참여자들을 그저 정해진 시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보고, 참여자들 역시 가볍게 시간만 때우다가 시간 인정만 받으려 한다.

3. 실제 봉사 활동 시간이 약속된 시간보다 상당히 짧다.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경우에는 할 일 없이 앉아서 기다리기 따위로 시간을 때운다.

4. 실제 활동보다는 보여주기에 치중한다. 함께 모여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복장을 하기 등을 증명하는 단체 사진 찍기가 목적처럼 여겨진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어딘가 아쉽다. 기대했던 것만큼 열심히 일할 수 없어서 아쉽고, 나의 진심이 노동력과 시간 인정 거래로 폄하되어 아쉽고, 좋은 의도로 참여했다가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관심이나 오해를 받아 아쉽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남편과 집에 있는 장비를 챙겨 들고 지역 강을 청소하러 둘이만 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나의 노력이 지역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이런 나를 이해해 주고 항상 지지해 줘서 고맙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러 가족들과 같이 무한리필 갈비 식당에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패리스 버겟에서 파는 장수 막걸리 셰이크를 사서 마셨다. 햇빛에서 탄 탓인지, 배불리 먹은 음식 때문인지, 막걸리 때문인지 둘 다 예정에 없이 낮잠을 자는 걸로 일주일 오후를 마감했다.


다음 편 이야기는 좀 더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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