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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29. 2022

나의 특별하고 행복한 일주일

행복한 한 주였다. 주중과 주말 구분이 없는 장장 휴가 기간 중 최고로 행복한 주였다. 여행을 두 번이나 했고,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여행지는 내가 가 보고 싶은 곳들이었고, 만난 사람들 역시 그간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월요일

고향 친구를 찾았다. 동네 친구이자 초등학교 동창인 조용했던 친구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저씨 목소리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인생 초년기를 함께 보낸 사람이 아직도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만나면  내가 떠난 후 고향 동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빠짐없이 듣고 싶다.


화요일

2년 반 만에 서울에 갔다. 그간 졸업한 대학교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꽃처럼 예뻤던 다부지고 자존심 강한 젊은 내가 있을 것 같았다. 동기들을 만났다. 동기들은 내가 우리 과에서 제일 예뻤고 심지어 다른 과 남학생들도 나를 좋아했다고 한다. 친했던 여자 동기는 내가 부유한 집에서 곱게 자란 아이처럼 보였다고도 했다. 그렇게 젊고 예뻤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밥 대신 과거의 영광을 먹고 현재의 초라함을 씻어낼  레몬 워터를 마셔야겠다.


수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했다.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산책로에 걸린 시도 읽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숲과 강을 헤집고 다녔다. 저녁에는 개인 사정으로 최근 좀 많이 우울한 남편 직장 동료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국악 콘서트에 갔다. 남사당패 공연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잘한다!>, <좋다!>를 연신 외쳐댔다.  콘서트가 끝나고 셋이서 집 앞 삼겹살 집으로 가서 고기를 맛있게 구워 늦은 저녁을 먹었다.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 당일치기 여행을 결심했다. SRT 표가 다 매진되어 KTX로 가서 중간쯤 내린 후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먼저 만난 띠동갑 동료는 처음 본 녹두 삼계탕을 대접했다. 1일 1식의 꿈을 야무지게 깨 주었지만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게 돼 기뻤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대체로 휴가 마치고 앞으로 일을 대할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당 모의를 했다. 띠동갑 친구와 헤어지고 동갑 친구를 만났다. 미용실 원장인  여고동창이 미용실 문을 닫은 후 건너편 막걸리 집에서 나는 맥주 그녀는 소주를 마셨다. 함께 나온 파전과 통닭이 맛있었지만 배가 이미 불러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동창의 결혼 생활 얘기를 들어주고 기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했다. 오는 길에 동창은 내 손에 더덕 막걸리 두 병을 쥐어 주었다. 묵직한 막걸리가 든 봉투가 꼭 오랜 세월 간간히 얼굴을 보고 지내면서도 계속 지속된 우리의 우정 같이 느껴졌다.


금요일

침대에서 오전 일곱 시 반까지 곤히 잤다. 평소에는 새벽 여섯 시 전에 소파에서 깨곤 했다. 잠을 나름대로 푹 잤다는 것이 기뻤다. 전날 당일치기 여행을 하느라 밀린 집안일들을 했다. 세탁기를 세 번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 청소도 했다. 좋아하는 TV 드라마도 두 편이나 보았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는 거실 창가에 놓인 키 큰 나무들과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하늘을 감상했다.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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