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두 개 반짜리 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260308)
누군가 내게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 커피가 실제로 맛있는 커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맛있는 축에 속하는 커피라고 가정할게. 일단은 커피 마시기에만 집중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마시기? 비추천. 드문드문 이야기하는 와중 침묵이 생기는 정도의 관계라면 모를까. 일하면서 마시기? 진짜 최악. 절대 안돼. 그냥, 멍때리든 공상에 잠기든, 커피를 마시는 행위만 해. 커피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다른 행동을 하면서 마시지마. 그게 거의 전부야.”
그리고 여기서 상대방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떨떠름하지 않다면, 바로 이렇게 이어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팁을 주자면, 평소엔 그냥 그런 맛의 커피를 마셔.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시지 말고, 예를 들면 이디야의 스틱형 가루 아메리카노 있잖아. 그런 것만 정해놓고 계속 마셔. 평소에 맛없는 것만 먹어서 입맛을 낮추라는 게 아니라, 입맛을 하나의 기준에 길들여놓고, 그래서 다른 자극이 들어오면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이거 의외로 진짜 꿀팁이야.”
나는 맛있는 커피가 좋다. (누구라도 맛없는 커피보다는 맛있는 커피가 좋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커피에 관해 잘 모르고, 애초에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도 않기 때문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드립백을 찢어 뜨거운 물을 둥글게 둥글게 부어 내리거나(적절한 물의 양이나 추출 시간 같은 건 모른다. 대충 해도 적당히 맛있기 때문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런 주제에 왜 내게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는 상상을 하느냐 하면, 그럴 일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이다.), 원두의 무게를 재 그라인더에 갈고 드립 필터에 부어 똑같이 물을 흘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거의 매일 이디야의 스틱형 가루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물을 끓이고, 컵에 스틱 두 봉을 찢어 부은 뒤 끓는 물을 가득 채운다. 가루 아메리카노의 맛은 그냥 그렇다. 그냥, 씁쓰름-한 게 커피구나, 하는 정도. 물론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도 있다. 주말이거나, 평일 오전 여덟 시 삼십 분 이전이거나. 그러니까 출근하지 않거나, 출근까지 한 시간 이상 남았을 때.
일할 때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게 내 규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업무와 관계없는 자극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일에 미친 사람 같은 표현인가? 조금 다듬어보자면, 어차피 일할 때 마시는 커피는 맛이 잘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두나 드립백을 사는 데 쓰는 돈이 아까운 것도, 커피를 내리는 데 소요되는 몇 분의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기껏 맛있는 커피를 내려놓고 그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게 내게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엇, 어쩌면 나의 ‘임시의 삶’적 사고가 이런 데서 발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커피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한때 출근하는 모든 날의 점심마다 같은 브랜드의 야채김밥 한 줄만 먹었다. 언제는 반숙란만 먹기도 했고, 언제는 양배추계란볶음만 먹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차마 그러지 못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엔 똑같은 검정 반팔티를 다섯 장 사서 그것만 돌려 입은 적도 있다. 적어도 일과 관련된 시간 동안에는 뭘 먹을지, 뭘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내게는 굉장히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잘 질려하지 않는 특성에, 효율을 중시하는 특성에, 작은 자극도 쉽게 거슬려하는 특성이 합쳐지면 이런 모양새가 되나보다.
그래서, 저런 걸 고민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아껴서 얻다 쓰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내내 절전모드로 사는 사람일지도.
아무튼 이 글은 맛있는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조용한 카페에서 혼자 허공을 보며 커피 맛을 실컷 즐긴 후, 다 식어버린 커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썼다.
오늘은 일요일이므로 내일은 다시 이디야 스틱형 가루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될 것이다. 아쉽지만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집에 사둔 원두가 모두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아낀 에너지를 대체 얻다 쓰는 걸까?) 여러분은 부디 맛있는 것을 미리 준비해두는 민첩한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