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79,000원짜리 심란

손바닥 두 개짜리 글

by 이일리


79,000원짜리 심란

(260313)



 ‘나만의 책상 하나 없다’며 울분을 토해내는 나(<10. 임시의 삶>편 참고)를 위해 남편이 결단을 내렸다. LG 클래식 TV를 사서 거실 테이블에 놓고, 일할 때는 업무용으로, 쉴 때는 아이패드를 대체해 유튜브/영화 감상용으로 쓰자는 것이다.


 찾아보니 거실에 두기에도 괜찮은 디자인이고, 겸용으로 쓸 수 있다는 데에 마음이 끌려 그러기로 했다. 32인치라는 크기가 약간은 부담이었으나, 내가 (빌려)쓰고 있는 사십 몇 인치의 게이밍 모니터보다는 작은 크기이므로 괜찮을 것 같았다.


 당근을 뒤져보길 며칠, 남편은 그 제품을 79,000원에 내놓은 사람을 발견했고 우리는 그 길로 거래를 하러 갔다. 드디어 나만의 업무공간(그래봐야 거실이지만)이 생긴다고 설레하던 것도 잠시, 바닥에 놓인 TV를 본 순간 나는 말문이 턱 막히고야 말았다.


 내 업무용 모니터로 쓰이려던 그 티비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컸다. 절대로 업무용으로는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십 몇 인치짜리 게이밍 모니터보다 분명 작아야 했는데 거의 비슷한 크기로 보일 정도였다. (알고 보니 모니터가 커브드라 실제 크기보다 좀 더 작아보이는 거였다!)


 나는 겨우 입을 떼 떨리는 목소리로 “이게… 몇 인치라고 했지…?” 라고 물었고, 마찬가지로 조금 당황했으나 의연한 척 판매자에게 돈을 입금하며 “삼십이 인치…”라고 답하는 남편이 뭘 잘못 안 게 아닐지, 그러니까 32인치가 아닌 42인치짜리 모델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위도 할 수 없었다.


 고요한 혼란 속에서 그 커다란 물건을 차 뒷좌석에 조심히 싣는데 성공한 뒤 조수석에 앉아, 나는 내가 내뱉은 약간의 울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 결국 79,000원짜리 심란이라는 것에 어찌할 줄 모르겠는 기분이 되었다.


 처음엔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라고 억지 긍정을 해보던 남편도 그 어마무시한 크기의 모니터를 (안 그래도 사용하던 게이밍 모니터가 너무 크다고 징징거리던 내가) 업무용으로 쓰기는 부담스럽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한 데다가, 결국 본인의 주도 하에 이뤄진 일인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꼈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크긴 크다, 그치?”를 연발했다.


 나는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응, 진짜 크다!”와 “아, 진짜 웃기다!” 정도를 돌려가며 뱉었지만 문득 문득 새어나오는 한숨을 숨길 수는 없었고, 그 반응들의 간극이 주는 언밸런스에 우리는 결국 와하하- 하는 웃음을 몇 번이나 터뜨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니터의 화질 때문에 업무용으로 쓸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TV처럼은 잘 쓰고 있다. “그래도 아이패드보다 보기 편하긴 하네.” “그치? 디자인도 괜찮고.”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비록 ‘그래도’가 여전히 포함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작 79,000원짜리 심란이고, 그 79,000원짜리 심란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록 추가로 필요한 용품을 사들이느라 돈을 조금씩 더 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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