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커피를 맛있게 마시다가

by 이일리


커피를 맛있게 마시다가

(260315)



 종종 들르는 동네 카페에 원두를 사러 갔다. 대여섯 종류의 원두를 살피다 ‘스페셜티’라는 이름이 붙은 소용량의 원두를 발견하고 설명을 읽고 있으니, 사장님이 다가오셔서 럼 배럴에 숙성한 원두라고 설명해주셨다. 일단 5kg 정도만 판매하는 거라고도.


 평소 선호하는 원두 타입이 있냐고도 물으시기에, 다 좋아하지만 날이 따뜻해져 산미 있는 게 좋겠다 답하니 내가 눈독들인 스페셜티 원두 외의 두 가지 원두를 추천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금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울 한정판매 원두로 마음을 정했으므로, 추천해주신 원두의 상시판매 여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원두에 대한 구매 의사를 밝혔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서비스로 커피를 한 잔 내려주시겠다는 제안을 냉큼 수락하며 추천해주셨던 원두 두 가지 중 ‘워시드’를 요청드렸다. ‘워시드’와 ‘내추럴’의 차이도 이제 막 알았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 분량과 칠링한 아이스 커피 몇 모금 분량을 함께 내어주신 덕분에 두 가지를 비교해가며 마셔보는 호사까지 누릴 수 있었다.


 주로 어떤 방법으로 커피를 마시냐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ㅡ‘주로 핸드드립으로 마시긴 하는데 그… 뭐지? 커피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거 있잖아요, 아 네네 그런 거, 그런 걸로도 마시고 가끔은 에어… 프레셔? 그런 걸로 마시기도 하구요…’ㅡ 조금은 커피 애호가처럼 비춰졌기 때문인지, 사장님은 내게 원두 분쇄 굵기나 물의 온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커피 맛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는 것 같을 땐 백산수나 평창수로 내리면 향과 맛이 더 잘 살아날 때도 있다는 꿀팁을 주셨다. 나는 사장님의 친절에 감사해하며 ‘하지만 저는 추출량도, 추출시간도 대충인 사람인 걸요…’ 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핸드드립 외 나머지 방법은 남편이 해주는 걸 보기만 했기 때문에 잘 모른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내가 얼버무린 기구들의 이름은 ‘모카포트’와 ‘에어로프레스’였고, 정석적인 핸드드립 방법은 원두에 맞는 물의 양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부으며 3분 이내로 추출하는 거였다. (내가 맞춰 하던 것은 처음에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며 뜸을 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맛있는 커피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설명에 써 있던 향 몇 가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싱그럽고, 향긋하고, 맛있었다.


 그간 ‘적당히’라는 명목 아래 내가 잃어온 즐거움이 얼만큼일지 가늠하다가, 앞으로는 조금 더 촘촘한 즐거움을 누려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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