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비용
(260318)
집 근처에 작지 않은 규모의 시장이 있고, 그 시장이 활발하고, 시장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정육점의 고기가 신선하고 맛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 집으로 이사온 뒤에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와 남편이 선택한 정육점의 특징은 사장님(이라 칭하지만 사장님이 아닐 수도 있다)의 인상이 매우 좋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뭐랄까, 늦은 저녁시간에 KBS2에서 방영하는 일일드라마에서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잘생긴 조연 남자배우 같달까. 꼭 그 분에게 사고 싶어서, 혹시 2호점에 가계시진 않을지 슬쩍 확인까지 해볼 정도다. 그렇다고 덤을 주시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전적으로 건실한 일일드라마 배우 같은 인상 때문이다.
어제는 저녁 식사의 메인 메뉴를 먹기 전, 조금만 구워 먹을 소고기를 살 요량으로 정육점에 방문했다. 역시나 그 분이 맞이하러 나오셨는데, 우릴 보고선 “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셨다. 일주일에 한번은 방문해 앞다리살도, 육회도, 가끔은 수입산 등심이나 한우도 구매하다보니 우릴 알아보실 때가 됐고, 내심 알아봐주시기를 기대하며 방문한 것이지만 그 ‘어!’하는 반응에 괜히 민망해졌다.
정육점에 오는 길, 한우도 맛있긴 하지만 수입산과 비교했을 때 그 가격 차이만큼 맛있지는 않아 가성비가 좀 떨어지므로, 얇게 구워먹을 수입산 소고기가 있는지 여쭤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던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한 발자국 앞에 서, 한우가 진열된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고민하고 있는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시는 사장님께 차마 수입산 소고기에 대해 여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져 남편이 “죄송해요, 조금만 고민해볼게요!”라고 하자 사장님은 역시나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셨는데, 그 대답은 “괜찮습니다! 많이 사실 건데요, 뭐. ㅎㅎ”였고 그 말까지 듣고 나니 오늘은 절대로 수입산 소고기에 대해 물을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장님은 절대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닐 텐데도!)
결국 우리는 230g에 4만원이 넘는 투쁠한우꽃등심을 골랐고, 사장님의 에너지 넘치는 따뜻한 미소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알아봐달라고 자주 간 건 맞지만 막상 알아봐주시니 민망하고 신경쓰인다는 이야길 나누면서.
투쁠한우꽃등심은 역시나, 정말 맛있었다. 나는 황홀하게 맛있는 투쁠한우꽃등심을 한 점 한 점 아껴 먹으며, 다음 방문 때는 꼭 앞다리살 같은 걸로 사장님의 기대를, 아니 구매단가를 낮춰두고 다음번엔 꼭 수입산 등심을 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