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를 받는 사람
(260328)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이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서 계셨다. 어쩔 수 없이 그 분이 내미는 전단지를 받으며 지나치는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문득, 그가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쯤 까칠하고 냉담해보이는 상사와 일을 했다. 그와 오래 일한 사람들은 그의 차가움, 무관심함 등을 유머 포인트로 삼아 장난쳤지만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그래보이긴 하지만, 제법 따뜻하고 섬세한(예민에 가깝지만) 사람인데… 라고 생각했다. 함께 좀 더 시간을 보낸 뒤 맞이한 편안한 분위기의 술자리에서 나는 그를 ‘사막같이 퍽퍽하고 건조할 뿐 차가운 사람은 아니’라고 정의내렸고, 그는 내 평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했다.
아무튼 그를 떠올린 이유는, 그가 길에서 건네는 모든 전단지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단지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냉담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래보이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더 인상깊었던 건 사실이다.
그에게 왜 전단지를 받느냐 물었을 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로 나도 길에서 주는 전단지를 피하지 않고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들에게는 전단지를 배포하는 게 일이고, 아마도 몇 장을 나눠주든 간에 그 자리를 지킨 시간에 대한 급여를 지급받을 텐데, ‘전단지를 배포’하는 일에 대한 반대급부로 ‘거절당하기’를 겪어야 한다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 하는.
아무리 돈을 버는 일이라 해도 몇 시간 동안 길에 서서 아주 사소한 상호작용(눈 맞추기, 전단지 주고 받기)을 시도하는 족족 실패를 넘어 거절까지(눈 피하기, 쌩 지나치기) 겪는다면, 그 자리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만약 나라면, 내가 길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일을 한다면, 나는 머쓱하고, 민망하고, 때로는 우습지만, ‘그냥 좀 받아주지’ 하는 작은 원망감도 느꼈을 텐데.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때로는 내가 피해야 할 인간이 된 듯한 느낌에 괜히 기분 상했을 것이고.
내가 전단지를 받지 않던 이유는 오로지 귀찮아서였다. 손에 쥐고 있다 주머니에 넣든 가방에 넣든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넣든 하면 되는데, 그 찰나의 노력마저도 귀찮아서. 그런데 그 귀찮음이 상대로 하여금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할 만큼 클까? 그렇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수집이라도 하듯 받고 다녔다. 그리고 몇 달 후, 외출을 거의 하지 않게 되면서 전단지 받기에 대한 나의 결심을 완전히 잊었다.
그렇게 몇 달 간 잊고 지내던 그 일련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전단지를 받은 뒤 그 분이 건넨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눈앞에 펼쳐지고 만 것이다. 별 거 아닌 일에 감사 인사를 해주신 그 분 덕에, 차가워 보였지만 조금 건조한 것일 뿐인 그 덕에, 앞으로 다시 전단지를 받고 다니기로, 그러니까 그 자리에 ‘존재’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거절의 경험을 선사하지 않기로 다시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받은 전단지를 모아 종이접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