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다쳐도 괜찮은 사람

by 이일리


다쳐도 괜찮은 사람

(260401)



 얼마전, 여느때와 같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한강공원에서 조깅을 하다 오른쪽 발목을 크게 접질렀다. 반환점을 돌 때의 속도를 몸이 채 따라가지 못한 것인지, 비련의 주인공마냥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철푸덕 넘어져버린 것이다.


 평소 발목을 삐끗하는 경우가 잦고 인대가 늘어나본 경험도 몇 번 있어 인대가 늘어났겠다, 그냥 삐끗한 정도다 하는 감이 바로 오는 편인데 이번엔 무조건이라는 느낌이 왔다. 심각하게 아파 눈물까지 찔끔 고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겨우 절뚝거리며 근처 벤치로 가 앉아 눈물을 머금고 쉬고 있자니 실시간으로 발목이 붓는 느낌이 들었다. 개모차(개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시는 분들을 보며 제가 그 귀여운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을 테니 저 좀 태워가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집까지 가는 경로를 찾아보니 택시를 타려면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근처 나들목까지 걸어가야했다. 7분쯤 휴식을 취하고 나니 생각보다 걸을 만했기 때문에 나는 집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보기로 결심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나들목에 도착하기까지 25분을 걸었고, 그 중 마지막 10분은 내 발목이 완전히 부서진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휩싸인 채였다. 결국 나들목에서 택시를 잡아탔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집안까지 들어올 때는 아예 왼발로 깽깽이걸음을 했다.)


 그 날은 내가 퇴근 후 엄마 집에 가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 집에 가려면 지하철 역까지 12분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버스로 갈아탄 뒤 정류장에서 집까지 7분을 걸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택시를 타야 했는데, 왕복 택시비를 생각하면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오른발을 바닥에 댈 수조차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부상소식과 함께, 엄마 집에 가서 저녁도 얻어먹고 반찬도 받아오고 싶었다는 애교 섞인 투정의 말을 하며 괜히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고, 엄마는 약간의 걱정을 담아 어쩔 수 없지, 집에서 움직이지 말고 푹 쉬어, 다음에 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내일 병원에 다녀와 연락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 근무시간인 이상 아파도 할 건 해야 하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냉동 가래떡을(그게 최선이었다) 발목에 대고 붓기를 가라앉히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은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어쩐 일인가 하고 받아보니 아까의 차분한, 호들갑 떠는 기색 없이 걱정어린 말투의 엄마는 어디 간 건지 마치 악귀가 들린 것마냥(엄마 미안…) 싱글거리는 말투로 지금은 어떻냐고, 인대가 늘어난 게 아니라 뼈가 부러진 건 아니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혹감을 숨기고, 일단 걸을 수 있었으니 뼈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다만 25분이나 걸은 것 때문에 통증과 붓기가 극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본인의 대퇴부가 골절되었을 때나 발목 뼈에 금이 갔을 때를 예시로 들며 뼈가 부러져도 걸을 수는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는 아픈 걸 잘 모르는 사람이라 그렇지만 나는 워낙 엄살이 심한 사람이니, 만약 뼈가 부러진 거였으면 거의 죽는 사람처럼 굴었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글쎄,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답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나 “아 왜 자꾸 겁을 줘! 내가 골절이었으면 좋겠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가, “아니~ 넌 골절돼도 괜찮잖아~” 하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난 골절돼도 괜찮다고? 대체 무슨 말이야? 엄마가 혹시 불법 토토 같은 데서 내 발목이 골절되는 데에 돈을 걸었나? 당연히 그럴리는 없을 텐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엄마는 답했다.


 “골절되면 보험료 다 나오잖아~ 그리고 넌 재택근무고!”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인대가 늘어나도 보험료는 나오지만, 골절이라면 진단비가 추가로 나온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물리적 출근을 하지 않으니 회사 일에도 지장이 없다는 뜻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지만 왜 굳이 그렇게 이야길 할까, 아픈 발목 탓인지 약간의 원망이 들었다. 그래도 그 후로 매일 전화해 나의 상태를 묻고 챙기는 걸 보니 나를 걱정하는 게 맞고, 무엇보다 엄마는 내 주변에서 나의 재택근무를 가장 대놓고 부러워하는 사람이니 재택근무의 이점에 대한 표현을 조금 과하게 했을 뿐이라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친 지 일주일쯤 지난 오늘, 나름의 재활 겸 천천히 걸어 시장에 갔다가 먹거리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치, 나는 다쳐도 괜찮은 사람이지, 하고 생각했다. 보험이 잘 들어있고, 물리적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턱이나 계단을 마주쳐 당황스러울 일도 적고, 그러면서도 돈 버는 행위는 계속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빠르게 배달로 받아볼 수 있는 지역에 살고, 나 대신 집안일을 하고 수발을 들어줄 수 있는 동거인이 있고…….


 힘들이지 않고 걷거나 높은 곳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먼 거리를 돌아가는 대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를 수 있고, 휠체어도 타지 않기 때문에 택시를 부를 때 휠체어 넣을 공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니까 내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실은 일종의 특권이구나. 집 바깥을 별 불편 없이, 별 생각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교통 약자 이동 제한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다. 그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공사 기간 중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을 거면 대체 이동 경로를 안내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오직 특정 그룹만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시민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


 다쳐도 괜찮은 사람, 은 정말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 다쳐도 괜찮은 사람이 맞구나. 돈을 벌기 위한 과정에서 턱이나 계단을 마주쳐 당황스러울 일도 적고, 무엇이든 빠르게 배달로 받아볼 수 있는 지역에 살고, 엘리베이터를 찾으러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나는. 매일 난감하고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모두가 다쳐도 괜찮은 사회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모두가 다쳐도 괜찮은 사회, 는 정말 이상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을 가정하고 정말로 그런 사회가 된다면, 정말 많은 것이 괜찮을 것 같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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