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네 개짜리 글
임시의 삶
(260302)
1.
리빙디자인페어에 다녀온 뒤로 특정 브랜드의 홈오피스용 책상이 계속 떠오른다. 가구나 인테리어에 관한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원목, 우드톤에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나의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이다. 그 좁은 공간마다 사람이 바글했던 걸 보니 내 눈에만 좋고 예쁜 것은 아니었나보다.
금액은 할인 적용 후 250만원. 할인이 종료되면 300만원쯤 할 것이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물건 사는 걸 즐기는 편도, 취향이 자주 바뀌는 편도 아닌 나로서는 기꺼이 지불할 만한 금액이다. 그런데 왜 계속 떠올리고만 있냐고 한다면 부동산 때문이다.
4년 간 살던 열 평짜리 빌라의 전세가 만기되고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 2년 정도만 임시로 살 열 평짜리 또 다른 빌라로 이사를 했다. 둘이 살기에 넓은 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살 크기도 아니고, 무엇보다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남편의 회사와도, 어쩌다 이직하게 된 나의 회사와도, 시장과도, 특히 한강과도.
지난 9개월 간 특별한 소음 문제도 없었고 집주인분도 친절했기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고,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느껴왔다. 비록 더 큰 냉장고를 살 수도, 독서용 리클라이너를 둘 수도 없고,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남편의 커다란 게임용 모니터를 둔 작은 책상을 써야 하고 그래서 노트북도 애매한 위치에 올려두어야 하긴 했지만 2년 후면, 그러니까 앞으로 대충 1년 몇 개월 후면 이십 평대의 신축 빌라로 이사할 수 있으니 괜찮았다. 그 1년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가구와 인테리어에 관한 취향을 쌓아 ‘신혼집’을 더욱 완성도 높게 꾸미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공사라는 건 일정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었나보다. 이러저러한 일로 공사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지금 당장 공사에 들어가도 우리가 이사 갈 날짜와 맞을지 불확실한 일정이었다. 그러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을 연장해 더 살든지, 아님 얼마 없는 예산으로 또 다시 발품을 팔아가며, 언제 이사를 나가야 할지 모르는 일정 속에서도 이사를 감행하든지 해야 한다.
물론 이건 1년 이상 남은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내 ‘임시 신혼집’의 기간이 2년에서 4년까지 두 배로 늘어났고, 그래서 1년 뒤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기대감이 무려 3년 뒤로 밀리며 내가 기꺼이 누릴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게 된 생활에 대한 아쉬움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리빙디자인페어에서 마음에 쏙 드는 홈오피스용 책상과 커다랗고 포근한 리클라이너를 보고 만지고 앉아보고 한번 더 기웃거리며 살펴보고 돌아온 다음날 오전, 드립커피가 든 머그컵을 쥐고 비 내리는 카페 창밖을 내다보며 ‘그 집으로 이사를 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2.
‘그 집’에 대한 상상은 ‘그 제안’에 대한 상상으로 번진다.
어느날 친구는 내게 추후 이러저러한 사업체를 차리게 되면 나를 주요 임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더 많은 연봉, 더 넓은 재량권, 더 의미 있는 일. 어떤 직장인에게든 달콤할 만한 제안이다. 친구가 꾸리려는 사업체의 방향성과 윤리성, 내게 해줄 금전적·비금전적 대우에 심지어는 아직 차리지 않은 사무실 위치까지(우연히도, 앞서 말한 진짜-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신혼집’과도 가깝다) 마음에 든다.
친구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유롭게, 그러나 치열하게, 일과 휴식을 적절히 조절하며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고,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더 자주 먹고 마시는 모습을. 상상 속 나는 훨씬 더 넓은 집에서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진 가구들에 둘러싸여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확실한, 그래서 바로 코앞에 있는 미래처럼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그 삶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삶이 임시의 삶처럼 느껴진다.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리빙디자인페어에서 본 책상을 떠올린다. 지금의 집에는 도저히 둘 수 없다. 집 구조 자체를 모두 바꿔볼까? 역시 그럴 수 없다. 그러려면 식사를 침대가 있는 방에서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사를 가게 될 때까지 몇 년을 이대로 지내고 싶지는 않다. 그때까지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게 아니라도 멋진 서재공간이 있으면 좋지만, 심적 효율성의 영역에서 말이다.)
문득 분통이 터진다.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에서 창작을 위해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했는데, 나는 그 얼마치의 수입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나만의 책상 하나 없다니.
3.
취준생 때는 취직만 하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취직 후엔 독립을 해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나만의 공간을 가진 뒤엔 집만 넓어지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살만 빼면, 연봉이 오르면, -만 하면/되면.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마법은 벌어지지 않았다.
조금 더 넓은 집과 조금 더 높은 연봉을 누리게 된 지금도 더 넓은 신혼집과 더 많은 연봉을 약속하는 친구의 제안을 떠올리고 있는 걸 보면, 더 넓은 신혼집에 살며 더 많은 연봉을 약속한 친구의 사업체에 합류하는 미래가 도달하더라도 나는 쭉 임시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그럼 욕망과 욕심 같은 것들을 버려야 할까? 그것도 이상하다. 더 높은 곳을, 더 나은 상황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니까. 진짜 문제는 오지 않을 미래를 기약하며 현재를 임시의 것으로 치부하고 흘려보내는 것이고.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현실에 기반한, 눈을 감아도 그대로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먼저 컴퓨터가 놓인 방부터 시작해보자. 컴퓨터 책상 뒤쪽에 쓰지 않고 방치해둔 테이블을 나만의 업무용 책상으로 쓰는 방안은 어떨까. 비록 남편의 비싼 의자를 쓸 수 없게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 의자 위에서 아무런 자세로 앉아있곤 했으니 상관없다.
이번엔 거실이다. 텅 빈 거실 가운데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아니면 테이블의 일부는 식사용으로, 일부는 업무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모니터를 요리조리 옮기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떻게 배치해볼 수는 없을까?
상상력도, 공간 지각력도 약한 탓에 머릿속에서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사이즈를 재고 그림을 그려가며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그 어떤 것도 마음에 쏙 들지는 않겠지만, 이건 임시의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