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 천국의계단을 타는 지킬 앤 하이드

by 이일리


[weekly illy] 25.06.23-25.06.29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까지는 매일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염없이 울적해진다. 하면서. 예전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잦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더 자주 지루해하고(현 상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 엄격한 테두리에 옭아매려는 것 같기도. 쇼츠와 릴스 같은 단발성 도파민에 중독된 흔한 현대인인 걸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는


매일 아침 5km 러닝을 했고, 거의 모든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수란에 도전했다 실패했지만 당근라페와 바게트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고, 루꼴라를 잔뜩 넣어 아주 신선한 느낌이 나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시장 두부와 애호박, 스팸으로 스팸두부짜글이를, 묵은지로 돼지고기 김치찜을 끓였고 리가토니면과 토마토파스타소스, 양파 잔뜩과 토마토, 잠봉, 루꼴라, 치즈로 신선하고 맛있는 파스타도 만들었다. 파스타를 먹을 때 빼고는 과식도 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꼭 산책을 나가 해를 쬐며 삼십 분 이상 걸었고, 집안은 정돈된 상태로 유지했다. 특히 설거지는 언제나 오후 여섯 시 전에 모두 마무리해두었다. 저녁으로 먹을 거리를 고민하고 지폐와 동전을 챙겨 시장을 기웃거렸고 저렴한 금액으로 상인의 친절과 신선한 재료를 함께 얻었다. 목요일 아침엔 눈 뜨자마자 버터를 소분해봤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버터가 좀 더 녹기를 기다렸다가 잘랐으면 쉬웠을 텐데, 아직 좀 얼어있는 상태인 버터를 힘으로 자르겠다고 칼등을 눌렀더니 손바닥에 깊은 자국이 났다.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낮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5km 러닝을 했고(500m 지점과 1km 지점과 1.5km 지점에서도 그만 뛸까 진지하게 생각했지만-습도가 너무 높아 공기가 무거워서 조금 힘들기에-) 다녀와선 수육을 시켜 맛있는 약주를 곁들여 먹고 제법 긴 낮잠에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밤이었고, 여기서 간단한 요깃거리만 먹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고 역시나 과식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일요일에는 배가 부른 채로 깨어났고, 그러므로 당연히 일요일 아침부터 하염없이 울적해진 것이다. 울적하건 말건 그냥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뛰러 나갔다 왔으면 이 울적함도 덜했을 텐데, 푹신한 소파에 앉아 몇 권의 책을 들었다 놨다, 일기를 쓸까 싶어 타자를 치다가, ... 도대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각이 밀려들며 더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울적해졌다.


예당에 갈까 싶어 전시 몇 개를 찾아보고, 지금이라도 나가 산책이라도 할까, 책을 들고 근처 카페나 한강에 갈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칠까 여러 가지를 고민했지만 그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얼 하든 너무 뻔했고, 지금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무언가에 몰입해서 시간이 가길 아까워해야 할 텐데.


다행히도 남편과의 아주 사소한 커넥션으로 그 '기분'은 한 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울적함의 자리에 약간의 지루함이 자리하자 책 몇 권을 뒤적거리고 점심과 간식과 저녁을 배가 꽉 차게 먹고 아주 짧은 산책만 겨우 하는 수준의 일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나른하게 늘어지는 일요일을, 나쁘게 말하자면 쓸모없고 한심하게 늘어지는 일요일을.


덕분에 월요일인 오늘 아침, 모든 게 망쳐졌다는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지난 인생에서 최소한 수백 번은 느꼈던 그 감각. 나는 영원히 뚱뚱한 채로, 매일을 한심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그 감각. 체중계에 올라서기가 무섭고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다가 점점 더 구렁텅이로만 빠지게 될 것이라는 그 감각. 맞서 싸우는 데에 실패하기도 하고, 겨우 올라타 한 고비 넘어보기도 한 그 감각. 따지자면 수백 번 중 겨우 십수 번만 이겨본 것 같은 그 감각. 그래서 매번 나를 나약한 인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그 감각.


그러나 딱딱하게 굳은 몸을 이끌고 집안 여기저기를 느리게 걸어다니며 어제의 흔적을 정리하다가,


두 팔을 쭉 뻗으면서 외쳐보았다. 인생은 길고. 나는-! 여기서 남편이 짧다. 고 치고 들어와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 지금 인생에 대한 얘길 하고 있잖아! 그치만 짧은 건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고 나니 조금 용기가 났다. 인생은 분절되어있지 않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까지 +10 정도 했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9 정도 했으니, 오늘은 원점이 아니라 +1 정도일 것이다. (만약 원점이라도 어쩔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점에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이것저것 해보고 원점에 온 게 훨씬 낫지.) 그러니, 이번주 평일에 또 +8 정도 하고 주말에 다시 -7 정도 한다 쳐도 다음주 월요일이면 0이 아니라 +2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질 수 있다.


평일의 나와 주말의 나를 나누는 게 꼭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로 나누는 일 같다. 시간을 잘개 쪼개 쓰면서 생산적으로 사는 것도(그러면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것도) 나고, 마냥 늘어져서 뭘 할지도 모르겠다며 지루해만 하는 것도 나인데 자꾸 그 둘을 유리하려 든다. 내가 내 맘에 드는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 이야기는 매우 지겨운 이야기다. 지난 세월 동안 아주 많이 얘기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꾹 참았던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종종 적어두는 것은 이렇게 '이겨낸다'의 마음으로 적어내려가고 나면 인생의 한 계단을 오르는 데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계단은 헬스장의 천국의계단 같은 거라 한 계단 올라도 가만히 서 있으면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지만, 그렇게 몇 계단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원래의 목적인 칼로리 소비와 근육량 증가를 누릴 수 있는, 결국 원점이 아니게 되는 그런 계단이다.


천국의계단을 타는 지킬앤하이드라니. 아무래도 지킬이든 하이드든 운동은 해야겠지.



아까 끝맺지 못한 말을 떠올린다.


인생은 길고 나는-


음.


오늘도 5km를 뛰러 나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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