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7. 샌드위치 여정

by 이일리


[weekly illy] 25.06.16-25.06.22



지지난주 월요일인 6월 9일부터 점심 샌드위치를 싸기 시작했다. 근 몇 년 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반숙란 두세 알과 두유를 먹고 한 시간에 가까운 산책을 하는 것이 내 회사 생활의 점심시간 루틴이었다. 물론 전 회사에서는 지하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 류를 식대로 사먹을 수 있어 그렇게도 자주 먹었지만 대개 그랬다. 이유는 이랬다. 첫째, 매일 점심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고역이다. 둘째, 그렇게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먹기 위해 만원 내외의 돈을 거의 매일 지불하는 게 너무 아깝다. 셋째, 밖에서 밥을 먹을 경우 산책할 시간이 거의 없다. 이러한 점을 정리해봤을 때 반숙란 두세 알에 두유 한 팩을 먹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효율적인 답이었다. 물론 오후 세네 시만 되면 배가 고파졌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간식을 안 먹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체중 감량에 대한 목표 의식이 거의 사라지고(이제 다시 불거지긴 했지만 2주 전쯤엔 그랬다), 한 끼에 단백질과 지방 조금 정도만 섭취하는 게 영양 구성 상 별로 좋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면서 간단한 요리에 대한 욕구가 조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산책을 하러 나가야 하는 나에게 도시락통이 굳이 없어도 되면서, 만들기에 번거롭지 않으면서,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과 섬유질이 적당히 섞여 있으면서 포만감도 줄 수 있는 메뉴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샌드위치가 낙점되었다.


나른한 주말, 깜빠뉴나 바게뜨로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 커피를 곁들일 때가 종종 있었지만 회사에 싸 다니기에는 아무래도 위아래가 모두 닫힌 샌드위치여야만 했다. 그래서 첫 주에는 식빵과 또띠아랩으로 먼저 싸는 연습을 했다. 처음부터 재료를 늘려두고 욕심껏 싸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최대한 간단한 재료로만 구성했고, 그래서 5일 동안 에그마요+당근라페 샌드위치 두 번, 오이샌드위치 두 번, 그리고 소시지와 채소를 넣은 또띠아랩을 만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샌드위치를 열어보면 조금 축축해진 채였지만 그래도 제법 맛있었다. 아침마다 복작복작 손을 놀려 내가 먹을 무언가를 준비하고 그걸 밖으로 가져나가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 주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주엔 좀 더 맛있을 밀도의 호밀잡곡식빵과 회사 근처 빵집의 깜빠뉴를 구매했다. 토마토소스와 생양파, 닭가슴살구이(무려 생닭가슴살을 사서 직접 구웠다), 루꼴라를 넣고 피자 샌드위치도 만들고, 토마토소스만 랜치와 머스타드로 변경해 또띠아랩도 만들었다. 아쉬운 점은 빵집에서 구매한 깜빠뉴가 너무 두껍게 썰려 샌드위치를 싸기에 부적합했다는 것이다. 결국 깜빠뉴는 주말에 오픈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었다. 소비기한이 한 달쯤 지난 소금집 브레사올라와 코파, 당근라페와 루꼴라를 얹어서.


지난주엔 이틀만 출근해서 샌드위치도 두 번만 만들었다. 이번주에는 적으면 한 번, 많으면 네 번까지도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샌드위치로 만들 만한 속재료가 계란과 당근 뿐이므로 아마도 또 에그마요 당근라페 샌드위치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다시 반숙란 두세 알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제 점심 메뉴로 샌드위치를 싸갈까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그리고 적어도 세 종류 이상의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이걸로도 충분하다.


하소연하듯 적어내려가게 될 것 같은 일이 있었는데, 샌드위치 덕분에 그러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의 나는 지난 2주 간 샌드위치 여정을 즐긴 사람.



image.png?type=w1
image.png?type=w1
image.png?type=w1


작가의 이전글1646. 일주일에 다섯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