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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는 슬플 때 힙합을, 나는 불안할 때 자격증을

회칙 5. 나만의 솔루션을 찾기

by 이일리


 이직한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이전 회사의 막바지에 담당했던 업무와 가까웠다. 전임자의 직급이 쭉 과장이었는데, 나는 사원으로 뽑혔다는 점에서 심적 부담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인수인계해줄 사람은 없었지만 맨땅에 헤딩하며 일하는 데 익숙했기에 금세 적응했다. 입사 초기의 열정과 차츰 성장해가던 엑셀 실력, 그리고 ‘사원 치고는’ 훌륭한 업무 능력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나는 사내에서 빠르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번 업무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기존에 명시화되지 않았던 지표를 쉽게 볼 수 있도록 꺼내놓는 것도, 현장에서 감으로 이야기하던 분야를 데이터로 말할 수 있도록 툴을 만들어주는 것도. 제일 재미있던 건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연도나 월을 바꾸면 자동으로 해당 데이터를 끌어와 이와 관련된 디테일한 분석 내용과 당시 기록했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엑셀 파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비록 이러저러한 사유로 그 파일을 계속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단순 분석 시간을 줄이고 더 디테일한 분석에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한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파일의 작성법과 활용법을 가이드라인으로 담아 배포하고 실제 대면교육까지 진행했고, 추후에는 50여 명의 점장을 상대로 기본적인 엑셀 활용법에 대한 대면강의도 진행했으니 사원급 치고는 제법 좋은 성과를 낸 셈이다.


 이외에도 아주 중요한 지표의 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성과도 냈다. 일회적인 절감이 아니라 시스템 개선을 통한 지속적인 절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간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컸다. 이쯤 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됐고, 이대로라면 연봉도 안정적으로 오를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쯤 됐으면 이제 만족할 만했다. 하지만. 어림없게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단계를 넘어섰더니 ‘뭐라도 더 해야 할 텐데’의 단계가 나를 반겼다.


 다량의 엑셀 데이터를 다루다보니 숫자 한두 개만 바꿔도 연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떻게 개선할 방법이 없나, 이것저것 찾아보니 SQL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SQL에 관해 찾아보니 관련된 자격증인 ‘SQLD’가 있었다. 비전공자도 독학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나는 바로 SQLD 책을 구매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 내용에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들도 다 한다는데 나만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정도의 자기확신을 갖게 되었다니! 스스로가 기특했다.) 남들은 일이 주 만에도 끝낸다는데, 그렇게까지 급할 건 없었다. 처음 이 주 정도는 내가 이렇게 멍청이라니! 생각했지만 다행히 삼 주차부터는 무슨 말인지 좀 이해가 됐다. 다행히 한 달쯤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이제는 실전이었다. 인터넷에서 SQL 설치법을 찾아 노트북에 DBeaver를 깔았다. 그런데 웬걸,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계속 오류가 났다. 며칠을 고생하다 당근에 ‘SQL 고수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어떤 분이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셔서 그대로 해봤더니 됐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다시 그분을 찾았다. 이번에도 그분은 문제에 대한 답을 주셨다. (계속 보상을 안 받겠다 하셔서 편의점 쿠폰이라도 보내드렸다.) 하지만 데이터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회사에서 나만 쓰는 SQL은 큰 의미가 없었다. PowerBI도 건드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으로는 데이터분석준전문가(ADsP) 자격증을 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 SQLD는 SQL 쿼리 기초라도 익힐 수 있지만, ADsP는 대부분 이론에 불과했다. 공기업이나 일부 회사에서 서류 심사 시 가점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걸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거였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으면서도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왜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취준생 때부터 쭉 그래왔단 걸 깨달았다. 취준생 시절에는 어떤 회사의 어떤 직무에 지원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서 ‘일단 뭐라도 따두자’라는 마음으로 워드프로세서,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한자능력시험 3급, KBS한국어능력시험 2+급, 토익 등을 닥치는 대로 준비했었다.


 취직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이 요상한 불안은 취직한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첫 직장에서는 회계를, 두 번째 직장에서는 세 가지 분야를 공부하다 흐지부지했고, 집에는 몇 장 펼쳐보지도 않은 자격증 문제집이 잔뜩 쌓였다. 그러다 이번 회사에서야 겨우 두 가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는 성과를 낸 것이다.


 퇴근 후, 혹은 주말마다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기도 했지만 차라리 그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을 취득하면 성취감을 얻었고, 설령 끝까지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용한 방 안에서 스탠드를 켜두고 공부에 몰입하던 시간의 진지함이 내 안에 남았다. 무엇보다, 백수 생활 때 너무 잘 알게 된 것처럼, 마냥 쉬거나 노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에겐 할 일이 있다는 약간의 압박과 통제감이 오히려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니까 내게 공부는 회사 생활과 커리어에서 풀리지 않는 불안을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남들에게는 강박처럼 보일 수 있는 이 패턴이, 나에게는 나만의 솔루션이었다. 나는 나에게 ‘불안형 생산성 인간’이라 이름 붙이고,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회칙 5. 나만의 솔루션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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