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이일리

회칙 6. 루틴을 만들고 지키기

by 이일리


 회사원에게 가장 기대되는 시간을 꼽으라 하면 1위는 퇴근시간, 2위는 점심시간이 아닐까. 특히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거나, 회사 주변에 맛집이 많다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회사 생활의 묘미 중 하나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회사 주변에 맛집이 없어서는 아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좀 어정쩡하지만 적당히 괜찮은 정도로 먹고 싶은 메뉴’를 먹겠다고(애초에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면 뭘 먹기로 결정하든 만족도는 크게 차이나지 않을 테니) <음식점까지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 최소 몇천 원, 많게는 만 원 이상까지 지불해야 하는 돈, 그리고 일단 시켰으니 괜히 적정량보다 많이 먹게 되어 가득 채우게 되는 위장과 칼로리>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을 즐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그냥 그런 음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평일 점심에까지 꼭 맛있는 메뉴를 먹어야 하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육체노동을 하거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타입의 인간도 아니기 때문에 하루 총 섭취 칼로리를 생각하면 점심 식사량을 줄여놓는 게 안전하다. 무엇보다 일하는 중간에 한번씩 하늘과 나무를 보며 산책하고 정신을 리프레시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점심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위해서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잘 결정해야 하는데, 통제형 인간인 나는 메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선 점심시간 삼십 분 전부터 마음이 초조해져 온다. 그러면 하루 중 가장 집중력이 높을 오전 타임의 소중한 시간을 고작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데에 낭비하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게 정말 싫다.


 이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점심식사를 삶은계란이나 연두부, 찐고구마나 바나나 같은 것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매일 똑같은 메뉴를 먹는 게, 그것도 계란이나 두부 같은 걸 먹는 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그게 괜찮았다. 오후에 배가 고프면 두유와 아몬드 같은 걸 먹었다. 백 퍼센트 다이어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 서랍에 쟁여둔 군것질도 했다.) 열두 시 땡,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미리 챙겨둔 식사를 십 분 만에 해치우고 바로 산책에 나선다. 오십 분 동안 사무실 인근의 공원, 또는 나무와 풀이 있는 어디라도 내내 걷는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양산을 쓰고 작은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걷고, 눈 쌓인 추운 겨울에는 목도리로 얼굴까지 무장하고 걷는다. 사무실 사람 모두가 아는 나만의 데일리 루틴이었다. 그러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오늘도 하나 해냈다는 생각에 오후를 뿌듯하고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에 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어도, 오후에 좀 빡빡한 일정의 업무가 예정되어 있어도 한바탕 산책을 하고 나면 그냥 사무실에 머물러 있었을 때나,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할 때보다 훨씬 기분이 나았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아서 다른 루틴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하기, 출근길에 영어 문장 1개 외우기, 퇴근길에 전자책 10분 읽기 같은 것. 해당 시간에 특이사항이 없다면 실행할 일종의 ‘디폴트값’을 만들어둔 것이다. 핸드폰에 루틴 체크 앱을 다운받아 몇 가지를 적어두고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어플을 배치하니 효과가 좋았다. 특히 ‘출퇴근길에 OO 하기’ 루틴은 나에게 찰떡같이 맞았다. 너무 사소하고 간단한 일이라 하지 않으면 계속 의식하게 되어 불편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큰 목적 없이 유튜브 쇼츠나 SNS를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 줄었고 제법 많은 숫자의 영어 문장을 외웠고 몇 권의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매일 같은 옷을 입기로 유명하다. 마크 저커버그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바 있다고 한다.


 “저는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가능한 한 다른 모든 의사결정을 최소화하고, 우리(페이스북) 커뮤니티를 위한 일에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학설들은 말합니다. 사소한 의사결정들, 뭘 입을지나 아침에 뭘 먹을지 등에 대한 것들이 피로를 쌓이게 하고 에너지를 소모시킨다고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한다 했으면서 왜 굳이 인용하느냐 할 수 있으니 일단 변명해보자면, 매일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우리를 마법같이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게도.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쓰이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은 데 비해 생활을 좀 더 쾌적하게 만들어주었다.


 만약 나에게 있어 매 끼니 다양한 메뉴를 먹는 게 기쁨이라면 매 점심마다 기쁘게 메뉴를 골랐을 것이다. 매일 출퇴근길에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즐거움이라면 기쁘게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 쇼츠 무한 스크롤하기’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었다. 하루에 영어 문장 하나 외우는 걸로, 책 10분 읽는 걸로 내 인생이 변하지 않겠지만 내가 내 시간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분명히 변했다. 그리고 그 만족감은 내 하루하루에 충만함을 번져가게 했다.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도 나는 여전히 루틴을 만들고 수정하고 지켜나가고 있다. 2년쯤 전에 만든 루틴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내 정신 건강을 지키고 하루를 더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행동은 여전히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잘 지켜지지 않는 루틴을 보며 내 의지를 탓했다면, 이제는 왜 안 하게 되는 건지를 먼저 분석해보고 수정하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출근 전 아침 수영하기’, ‘출근 전 5km 뛰기’ 같은 루틴은 아무리 노력해봐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내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었고,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하려면 7시 3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으므로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7시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에게 6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을 루틴으로 삼으라는 건, 그리고 그걸 실행하지 못하면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출근 시간이 9시 30분이고 재택근무까지 해 통근시간도 필요하지 않은 지금은 8시에 일어나 아침운동을 한다. 의지는 그대로인데, 환경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잘 구분해서 스스로를 나약하다거나 게으르다고 판단하지 않는 게 루틴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점인 것 같다.


 습관도 일종의 근육이다. 새롭게 만들 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번 자리 잡으면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오래 쉬면 다시 만들기가 힘들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도록,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게 결국 가장 덜 고생하는 방법이다. (물론 그게 잘 안 돼서 자책을 하는 거지만!) 그리고 앞서 말했듯, 약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루틴인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그 실행을 돕는 환경을 갖추는 것까지가 루틴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큰 싸이클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루틴과 성취를 구분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 매일 5km를 뛴다고 해서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매일 30분씩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한 달 뒤에 토익 950점을 받으리란 보장도 없다. 루틴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칙 6. 루틴을 만들고 지키기


keyword
이전 05화5. 너는 슬플 때 힙합을, 나는 불안할 때 자격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