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회사가 망했다. 근데 망한 건 회사지 내가 아니다

회칙 7.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임을 기억하기

by 이일리


 1년 3개월쯤 다니며 SQLD와 ADsP도 취득한 세 번째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수치화된 성과도 냈고, 수십 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엑셀 강의도 했다. 회사가 내게 기대한 역할 이상으로 충분히 해냈다고 느꼈고 실제로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아쉬웠다. 새로운 산업군, 이왕이면 IT나 금융 업계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며 비효율을 개선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회사 생활 6년차의 주임 대리급. 지금이 움직이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 생각했다.


 되는대로 이력서를 넣다가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지원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역할을 제안받은 것이었다. 그간의 이력을 보았을 때 나와 잘 맞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원하던 IT 업계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었다. 다만 매년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회사가 망하면 커리어가 꼬이진 않을까, 급여를 못 받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도 면접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좋아 결국 네 번째 회사로 옮기기로 했다. 회사 망하면 실업급여 받지, 뭐.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입사 후 세 달까지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처음 접하는 IT 산업은 낯설었지만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투자가 지연되며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회사의 중심 서비스가 중단되고, 무급휴가 권고가 내려왔다. 수습 기간이 막 끝난 직후라 강제 해고는 면했지만, 분위기는 이미 침몰 직전이었다. 많은 직원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여 떠났고, 나는 남기로 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월급이 안 들어오더라도 당장 먹고살 돈은 있다. 둘째, 투자금이 들어온다는 가정하에, 지금 퇴사해 월급보다 적은 실업급여를 받고 근속기간을 날려버리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셋째, 이게 나에게는 가장 컸는데, 본부장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에 가도 완벽히 만족할 순 없을 테니, 이 사람 밑에서 더 배우며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합리화했다. (솔직히 말해, 자기합리화에 뛰어나고 때로 놀라울 정도로 안일한 나의 성향도 한몫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 같던 기다림이 또 한 번 연장된 날, 본부장은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이력서를 고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반 년 만의 일이었다.


 채용 사이트를 아무리 봐도 이력서를 넣을 만한 곳이 영 없었다. 구직난이라는 말이 실감됐다. 다행히 그간 해온 일과 비슷한 직무로 이력서를 넣을 만한 곳이 몇 군데 눈에 띄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또 길고 긴 백수 생활을 맞이하며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될 것이었다. 하루 빨리 출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회사 산업군도, 업무 내용도 마음에 쏙 드는 포지션을 찾았다. 다행히도 서류 전형에 합격해 1차 면접을 보았고, 이후 곧바로 과제 전형을 받았다. 과제 전형에 합격하면 2차 면접을 볼 것이고, 1차 면접에서 내게 보인 호감도면 2차 면접에서는 웬만해선 합격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길로 퇴사 날짜를 확정하고 이후 실업급여도 신청했다. 생애 첫 실업급여였다. 이대로라면 실업급여를 딱 한 번 받고, 바로 이직에 성공해 열심히 다니다, 1년 뒤 조기재취업수당도 최대치로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회사는 핀테크 회사였다. 비록 이전 회사가 망하고 급여도 받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IT 업계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내 결심은 이루어진 거였다. 모든 조건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나는 2차 면접까지 무사히 마친 뒤 설레는 맘으로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회사 내부적인 사정으로 결국 포지션이 닫혀 나를 채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 담당자 분이 많이 아쉬워 하시길래 마음은 좀 달랬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웠다. 이제 겨우 첫 면접이었지만, 어디 가서 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산업군의 마음에 드는 직무를 찾아 지원하고 서류 합격 후 면접을 보고... 의 과정을 반복하나 싶어 마음이 괴로웠다. (맞다. 나는 첫 술에 배부르길 원하는 사람이다.) 이 회사 외에는 서류 합격 소식을 전해온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이대로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다시 우울감에 젖어들게 될 거였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너무 재밌어 보이는, 나의 이력과 성향과 100% 맞는 공고를 발견했다. 흔하게 나오는 포지션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지원자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지만, 동시에 회사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는 서류에서 바로 탈락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서류에 합격하더라도 1차 면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업무적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는 시도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원은 했고, 놀랍게도 서류 합격 후 1차 면접 날짜를 잡게 되었다. 1차 면접에서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합격 시그널을 얻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이내 2차 면접이 잡혔고, 열심히 준비했다. 정말 열심히. 면접이 꽤나 빡빡할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 일해보고 싶은 직무인 데다 산업군도 IT 쪽이기 때문에, 1차 면접으로 봤을 때 2차 면접에서도 합격할 가능성이 제법 보였기 때문에, 내가 살면서 일해볼 회사 중 어쩌면 가장 규모가 큰 곳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심지어는 집과도 가깝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 때문에. 정말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마침내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심장이 뛰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축하는 ‘그간 맘 고생 많았지? 이번에 한번 밑바닥을 쳤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라는 말이었다. 당연히 고마운 말이었지만 뭔가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표현이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밑바닥을 쳤으니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말은, 마치 세상이 공평한 균형 아래 작동한다는 믿음처럼 들린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쁜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다음에 좋은 일이 반드시 오는 것도, 좋은 일의 대가로 반드시 나쁜 일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사건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다.


 회사가 망했다. 받아야 할 돈도 받지 못했고, 불경기에 백수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불운한 일이었다. 물론 ‘이러다 커리어가 완전히 꼬이면 어쩌지’, ‘백수 기간이 길어지면 또 우울해질 텐데’ 하는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이렇게 나쁜 일이 있었으니 다음엔 좋은 일이 오겠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게 내 인생의 밑바닥인가? 하는 생각도. 사람들은 내게 마음고생이 심했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리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도 나같은 우울 취약형 인간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든 일을 이해하려 들고, 이유를 찾고, 맥락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모르는 채로 두는 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특히 영화나 소설처럼 잘 짜인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인생은 누군가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참고로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떤 장면은 그냥 그런 장면일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과 태도가 내 정신을 붙잡아주는 안전장치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내게 벌어진 이 일을 지금 당장 해석하려 들지 말자’는 생각이.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괴로웠던 일이 시간이 흘러 좋은 기회로 해석되는 경험을 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두 번째 직장에서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해야 했던 매장 근무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납득되지도 않고 마냥 불운하게만 느껴졌지만, 매장에서 근무해본 경험 덕에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 첫 번째 직장에서 청년내일채움공제 3년형이 철회처리되며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었을 때, 백수 생활을 하며 많이 괴롭고 우울했지만 내가 퇴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회사도 폐업의 길을 걸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참 다행이었던 일이다 싶다.


 누군가는 그 일이 발생한 시점에서 이미 긍정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코로나 상황에서 매장 근무가 아닌 본사 근무를 지속했다면 그 방향에서의 커리어를 더 빠르고 탄탄하게 쌓아 더 좋은 기회를 더 빠르게 잡았을지도 모른다. (무려 9개월 간 현장에서 일했으니 말이다.) 첫 번째 회사가 폐업해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도, 그 때 또 괜찮은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깊은 고민 끝에 ‘사건과 상황은 점이고 그 사이에서 내가 내린 선택들이 점 사이를 잇는다, 그렇게 생긴 선들 중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 선들을 이어 붙이면 하나의 도형이 되고, 그 도형들이 결국 내가 그리고자 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치 이력서를 쓸 때와 비슷한 것 같다. 그간 해온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열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포지션에 맞춰 경험을 추려내고 맥락을 엮어 그 포지션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하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을 <예술대생 출신이 최저연봉으로 시작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는 식으로 썼다면 더 많은 관심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에서 잘나지 않은 사람이 성공에 가까운 성과를 달성해낸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비판의 의미는 전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의도에서 비롯된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이야기를 메인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은 초장부터 ‘그런 의미’로 읽히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노력 끝에 더 좋은 회사에 다니게 된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여러 노력 끝에 더 나은 정신 건강을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기를 소망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해석해달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동일한 이야기를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직업인으로서의 성공 서사’로 읽혀 위로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고백하자면 나도 가끔 이 지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주체성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나쁜 일이 좋은 일 또는 더 나쁜 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거나, 밑바닥을 쳤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단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 그 일들이 나중에 다른 일과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연결될 때,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나는 느꼈다.



회칙 7.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임을 기억하기


keyword
이전 06화6.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이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