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9. 인생은 연속적이고 나는 하나임을 알기
얼마 전 홈트 유튜브를 보다가 새삼 위로받은 경험이 있다. 언제나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하고 날씬한 몸으로 영상을 찍어 올리시는 유튜버 분이, 추석 연휴에 푹 쉬며 음식을 많이 먹느라 2kg이 늘고 뱃살도 쪘다며 자기도 앞으로 이 시퀀스(영상)로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거다. 물론 그 분의 몸은 여전히 탄탄하고 날씬했다. 그런데도 왜 위로를 받았냐 하면 살이 찌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내가 유독 게으르거나 나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평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식단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도 운동을 좀 쉬거나 칼로리를 많이 섭취하면 체중이 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2kg 정도는 그리 큰 변동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으면 며칠, 길어도 한 달 정도면 다시 덜어낼 수 있는 무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무게가 다시 늘어날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망했다’고 생각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고작 1~2kg에서 시작한 증량은 그 ‘망했다’는 생각 때문에 5kg, 심할 땐 8kg까지 가서야 멈추기도 했다. 그쯤 살이 찌면 다시 위기감을 느끼고 열심히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서 몇 kg을 감량하며 뿌듯해하다가, 어쩌다 시작된 폭식이나 과식이 하루이틀 이어지면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하고 자책하며 악순환에 빠지는 식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1~2kg쯤 쪘을 때 다시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면 되는데, 왜 거기서 혼자 또 구렁텅이로 빠지냐고. 어차피 그 구렁텅이에서 다시 꾸역꾸역 기어나오려 할 거면서 왜 그걸 반복하냐고. 하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는 법이고,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깨우치게 되는 명제가 있다. 바로 인생은 연속적이고 나는 하나라는 것. 잘한 나와 못한 나를 구분짓고 단절시키려 드는 건 나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아는 건 다르다. 그래서 이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매주 월요일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있던 일을 돌이켜 보는 ‘주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꼭 모든 일이나 생각을 적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적곤 했는데, 어쨌거나 주간일기라는 타이틀을 달아 두었으니 일단 지난 일주일을 하루하루 돌아보아야 했다. 게으르고 한심한 일주일을 보낸 것 같아 유독 기분이 좋지 않던 어느 월요일, 막상 주간일기에 이것저것 적어놓고 나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한 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지난 날들을 평가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주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인지 편향과 관련된 ‘피크엔드(Peak-End) 법칙’이란 게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되돌아볼 때 그 전체의 평균이나 합계보다는 그 경험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끝났을 때의 감정(엔드)이 기억과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제법 괜찮은 하루를 보냈어도 누군가의 불친절에 기분이 상했다면 그날 하루를 별로인 날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를 뿌듯하고 활기차게 잘 보냈더라도, 일요일에 축 처진 채 늘어져 보냈고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면 일주일을 그저 그랬던 날들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법칙은 내가 주간일기를 쓰며 깨달은 것과 정확히 일치했고,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주간일기를 쓰며 내 인지 편향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일주일 중 평일 5일만 잘 지내고 주말 2일은 그저 그렇게 지내도 기분이 좋은 편이다. 그간 울적하게 맞이하던 월요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니, 남은 평일도 더욱 개운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선순환의 고리를 만든 셈이다.
이번 이야기와 관련해, 얼마 전 쓴 주간일기 두 편을 아래에 옮겨 보았다. 가타부타 더 말을 붙이는 것보다 그 때의 내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두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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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의 일기 1 ─ 2025년 6월 30일, <천국의계단을 타는 지킬 앤 하이드>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까지는 매일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염없이 울적해진다. 하면서. 예전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잦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더 자주 지루해하고(현 상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 엄격한 테두리에 옭아매려는 것 같기도. 쇼츠와 릴스 같은 단발성 도파민에 중독된 흔한 현대인인 걸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는
매일 아침 5km 러닝을 했고, 거의 모든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수란에 도전했다 실패했지만 당근라페와 바게트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고, 루꼴라를 잔뜩 넣어 아주 신선한 느낌이 나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시장 두부와 애호박, 스팸으로 스팸두부짜글이를, 묵은지로 돼지고기 김치찜을 끓였고 리가토니면과 토마토파스타소스, 양파 잔뜩과 토마토, 잠봉, 루꼴라, 치즈로 신선하고 맛있는 파스타도 만들었다. 파스타를 먹을 때 빼고는 과식도 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꼭 산책을 나가 해를 쬐며 삼십 분 이상 걸었고, 집안은 정돈된 상태로 유지했다. 특히 설거지는 언제나 오후 여섯 시 전에 모두 마무리해두었다. 저녁으로 먹을 거리를 고민하고 지폐와 동전을 챙겨 시장을 기웃거렸고 저렴한 금액으로 상인의 친절과 신선한 재료를 함께 얻었다. 목요일 아침엔 눈 뜨자마자 버터를 소분해봤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버터가 좀 더 녹기를 기다렸다가 잘랐으면 쉬웠을 텐데, 아직 좀 얼어있는 상태인 버터를 힘으로 자르겠다고 칼등을 눌렀더니 손바닥에 깊은 자국이 났다.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낮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5km 러닝을 했고(500m 지점과 1km 지점과 1.5km 지점에서도 그만 뛸까 진지하게 생각했지만-습도가 너무 높아 공기가 무거워서 조금 힘들기에-) 다녀와선 수육을 시켜 맛있는 약주를 곁들여 먹고 제법 긴 낮잠에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밤이었고, 여기서 간단한 요깃거리만 먹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고 역시나 과식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일요일에는 배가 부른 채로 깨어났고, 그러므로 당연히 일요일 아침부터 하염없이 울적해진 것이다. 울적하건 말건 그냥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뛰러 나갔다 왔으면 이 울적함도 덜했을 텐데, 푹신한 소파에 앉아 몇 권의 책을 들었다 놨다, 일기를 쓸까 싶어 타자를 치다가, ... 도대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각이 밀려들며 더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울적해졌다.
예당에 갈까 싶어 전시 몇 개를 찾아보고, 지금이라도 나가 산책이라도 할까, 책을 들고 근처 카페나 한강에 갈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칠까 여러 가지를 고민했지만 그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얼 하든 너무 뻔했고, 지금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무언가에 몰입해서 시간이 가길 아까워해야 할 텐데.
다행히도 남편과의 아주 사소한 커넥션으로 그 ‘기분’은 한 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울적함의 자리에 약간의 지루함이 자리하자 책 몇 권을 뒤적거리고 점심과 간식과 저녁을 배가 꽉 차게 먹고 아주 짧은 산책만 겨우 하는 수준의 일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나른하게 늘어지는 일요일을, 나쁘게 말하자면 쓸모없고 한심하게 늘어지는 일요일을.
덕분에 월요일인 오늘 아침, 모든 게 망쳐졌다는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지난 인생에서 최소한 수백 번은 느꼈던 그 감각. 나는 영원히 뚱뚱한 채로, 매일을 한심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그 감각. 체중계에 올라서기가 무섭고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다가 점점 더 구렁텅이로만 빠지게 될 것이라는 그 감각. 맞서 싸우는 데에 실패하기도 하고, 겨우 올라타 한고비 넘어보기도 한 그 감각. 따지자면 수백 번 중 겨우 십수 번만 이겨본 것 같은 그 감각. 그래서 매번 나를 나약한 인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그 감각.
그러나 딱딱하게 굳은 몸을 이끌고 집안 여기저기를 느리게 걸어다니며 어제의 흔적을 정리하다가,
두 팔을 쭉 뻗으면서 외쳐보았다. 인생은 길고. 나는-! 여기서 남편이 짧다. 고 치고 들어와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 지금 인생에 대한 얘길 하고 있잖아! 그치만 짧은 건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고 나니 조금 용기가 났다. 인생은 분절되어있지 않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까지 +10 정도 했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9 정도 했으니, 오늘은 원점이 아니라 +1 정도일 것이다. (만약 원점이라도 어쩔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점에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이것저것 해보고 원점에 온 게 훨씬 낫지.) 그러니, 이번 주 평일에 또 +8 정도 하고 주말에 다시 -7 정도 한다 쳐도 다음 주 월요일이면 0이 아니라 +2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질 수 있다.
평일의 나와 주말의 나를 나누는 게 꼭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로 나누는 일 같다. 시간을 잘개 쪼개 쓰면서 생산적으로 사는 것도(그러면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것도) 나고, 마냥 늘어져서 뭘 할지도 모르겠다며 지루해만 하는 것도 나인데 자꾸 그 둘을 유리하려 든다. 내가 내 맘에 드는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 이야기는 매우 지겨운 이야기다. 지난 세월 동안 아주 많이 얘기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꾹 참았던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종종 적어두는 것은 이렇게 '이겨낸다'의 마음으로 적어내려가고 나면 인생의 한 계단을 오르는 데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계단은 헬스장의 천국의계단 같은 거라 한 계단 올라도 가만히 서 있으면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지만, 그렇게 몇 계단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원래의 목적인 칼로리 소비와 근육량 증가를 누릴 수 있는, 결국 원점이 아니게 되는 그런 계단이다.
천국의계단을 타는 지킬앤하이드라니. 아무래도 지킬이든 하이드든 운동은 해야겠지.
아까 끝맺지 못한 말을 떠올린다.
인생은 길고 나는-
음.
오늘도 5km를 뛰러 나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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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의 일기 2 ─ 2025년 9월 23일, <지난주의 나는 전혀 끔찍하지 않았잖아 ? (부제: 기록 >>>>>> 기억)>
(...)
이 주간일기를 쓰는 이유를 좀 잊고 있다가 최근 다시 깨달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ㅡ 지난주의 내가 그렇게까지 끔찍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주도, 돌이켜보니, 그렇게까지 끔찍하진 않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 연속으로 3km 또는 5km를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31일 중 17일 동안 3km 이상 달리는 것에 5만 원을 걸어놓고 막바지에 몰아 뛰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든 그렇지 않았든 한 건 맞으니까.) 회사 업무는 아직 적응 기간이지만 이해하는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고, 주말엔 오랜만에 전시도 보고 치즈와 샤퀴테리 약간, 와인과 맥주를 샀으며 피크닉용 헬리녹스 의자와 테이블을 세트로 구매해 바로 한강으로 피크닉도 다녀왔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내가 감각하던 지난주에 비해 훨씬 풍요로웠고 만족스러웠구나.
적기 전까지는 운동도 제대로 안 하고 먹고 자기만 하면서 게으르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참, 동네에서 맛있는 참치회를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가게도 발굴했다. 참치회만 따로 먹는 일이 잦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의 얼어있다시피 하거나 기름기가 너무 적고 푸석푸석하거나 물맛이 많이 났는데, 여기는 아카미도, 오도로도, 배꼽살도, 그러니까 내어준 모든 부위가 모두 평균 이상으로 맛있었다. 평소 사케도 즐기지 않지만 편의점에서 와인 효모를 넣은 사케를 팔기에 참치회에 곁들여 먹을 심산으로 구매했는데 이것도 꽤 입에 맞았다.
지난주의 나는 전혀 끔찍하지 않았구나.
역시 흐린 기억 뭉텅이를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것보단 하나씩 돌아보며 기록하는 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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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9. 인생은 연속적이고 나는 하나임을 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