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10.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기
어느덧 열 번째 글이다. 이쯤이면 내가 하고 싶던 얘기는 모두 풀어놓았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여기까지 와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아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인생의 극히 일부만을 꺼내놓은 탓에 의식의 흐름이 억지스럽게 해석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어떤 이야기를 남겨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역시 이 이야기로 끝내는 게 맞을 것 같다.
인간은 연결된 존재다. 제아무리 잘났어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을 갖지 못하면 고립감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고립은 우울을 낳고, 우울은 다시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운 좋게도 나에게는 언제나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가장 힘들던 시절의 나를 붙잡아준 건 일주일에 한두 번, 일 년도 채 만나지 못했던 대학교 상담센터의 상담 선생님이었다. 졸업작품집을 완성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졸업을 못 할까 봐, 겨우 졸업을 하더라도 제대로 취직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영영 별 거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무섭다고, 이렇게 게으르고 나약한데,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한심하다고 우는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학교 다니면서 수업 듣고 과제하고, 짧게라도 운동하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스스로 나아지고 싶어서 상담센터를 꾸준히 오는 사람이라면 이미 자기 힘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 어떤 말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분명 진심 어린 확신과 따스함이 있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일리 씨와 같은 고민과 자책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한심해 보일까요?” 나는 그것과 이건 다르다고 했다. “남은 응원하면서, 왜 자신한테는 그렇게 가혹해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 혹시 계속 그런 생각이 들면, 제가 일리 씨한테 그래온 것처럼 스스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줘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응원한다고.”
캠퍼스를 벗어나 상담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선생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이 내게 해줬던 말들을 그대로 옮겨 나 자신을 다독이는 편지를 쓰고, 방의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자주 읽었다.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내 안에 선생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억지로나마 응원의 말을 건네다보니 신기하게도 그 말들이 점점 설득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간관계가 좁고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내게도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려깊은 친구들은 정말 감사하게도 자기만의 방식(내게 맛있는 음식을 사먹이고 자기 집에서 푹 잠을 재우거나, 엽서나 편지를 써서 건네주거나, 약을 먹고 나아지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주거나)으로 나를 챙겨주었다.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걸로도, 예를 들어 구몬 일본어에서 새로운 챕터에 들어갔다는 이야길 해도 ‘역시 이일리, 노력하는/성취해내는 너 정말 멋져!’라고 과하게 칭찬해 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스스로를 취직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뭘 위한 건지도 모르겠는 자격증 공부를, 그것도 끽 해봐야 세네 시간밖에 안 하는 동네 음식점 알바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상담 선생님의 관점에서, 그리고 친구들의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니 나는 취직 준비를 하며 알바를 하고, 하루 몇 시간씩 자격증 공부를 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낸다며 사장님 부부가 건네주던 칭찬도 달콤하고 소중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내 안에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가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치솟아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차라리 나를 믿는 그들을 믿자고 다짐했다. 그들의 평가가 죄다 틀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더 운 좋게도,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모든 직장에 나를 인정해 주고 좋게 평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말, 친구들의 말, 그 모든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직장인으로서의 효능감이었다. 내가 마냥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스스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걸 조금씩 깨달았다.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며 직장인으로도, 생활인으로도 안정을 찾게 되니 비로소 더 이상 스스로를 게으른 인간이라고 몰아세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자격증 공부를 하곤 했지만 말이다.)
퇴사와 이직을 몇 차례나 반복하는 내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준 엄마에게도(비록 10대 시절의 내게 게으르다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내 곁을 가장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에게도(비록 연애 초반 맥주와 거품의 비율을 완벽하게 따랐다고 자화자찬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찬가지로 감사하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지금만큼 단단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내 브런치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귀한 시간을 내어 내 이야기를 읽고, 잘 읽었다는 표현까지 해준 것이니까.
한때는 별 것 아닌 일에 칭찬을 하는 게 영양가 없는 일 같았다. 계속 칭찬만 하면 내가 이 자리에 안주하게 될 수도 있으니, 차라리 하던대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 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돌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별 거 아닌 칭찬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자책과 불안이 일상인 나에게는 그토록 어렵던 세상을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걸.
혹시 나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 속에 나만의 상담 선생님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게 어렵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대한 좋은 해석을 붙여주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친구, 가족, 회사 동료, 또는 인터넷 세상에 고민 글을 남긴 사람, 누가 됐든 상대는 상관 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당신 주변엔 분명, 당신을 믿고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는 걸. 혹시 정말 아무도 없는 것 같다면 ‘이일리’를 떠올려도 좋다. 스스로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응원하니까. 이게 이 긴 글을 통해 내가 가장 하고 싶던 말이다.
회칙 10.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