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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회칙 4. 존중하며 버티기

by 이일리


 9개월 간의 매장 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갔으나, 소속 팀이 달라지며 기존에 맡았던 것과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기존의 일은 주로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었는데, 새로 맡게 된 일은 숫자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하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숫자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제법 적성에 잘 맞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괜찮은 수준을 넘어 기존의 업무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러다 팀장과 팀원이 퇴사하며 나 홀로 남게 되었다. 충원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모호한 업무 분장으로 인해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일들을 떠맡게 되었다. 아주 바빴고, 벅찼다. 가끔은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선 채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무척 좋았다. 매장에서 일한 경험이 실제로 도움이 엄청나게 된다는 것 또한 자주 체감했다.


 그런데 계속 불안했다. 계속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해도 되나? 한두 가지에 집중해 깊이 파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회사에 가면 난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아니,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뭐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맴돌았다. 취직만 하면 이 모든 불안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인간에게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단계별로 있다던(나중에 세 가지 단계가 더 추가되었지만) 매슬로우의 이론이 맞다는 걸 이렇게까지 몸소 증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서 내가 맡은 일과 관련된 분야를 하나씩 늘어놓고 이 중에서 그나마 계속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러면서 그런대로 돈벌이도 될 것 같은 분야의 자격증 문제집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목적과 필요성이 뚜렷하지 않은 공부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고, 역시나 끝까지 펼치지 않은 문제집만 하나둘 쌓여갔다. 그러다 고3 9월 전까지 목표로 했던 학과의 대학원을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대학원 등록금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드는 생활비도 걱정이었지만 그 분야가 아니라면 도대체 내 마음이 가서 평생 할 만한 일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퇴근 후 몇 시간씩, 그리고 주말엔 열 시간 가까이 공부를 하곤 했다. 비슷한 류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에도 참석했다. 상당히 진심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분야마저도 프로-작심삼일러의 의지박약을 이겨낼 만큼의 의지를 주지는 못했다. 공부해야 할 내용의 양, 대학원에 다니며 드는 비용, 대학원 졸업 후 돈을 벌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실제로 벌게 될 월급의 액수,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포기해야 하는 돈과 시간과 다양한 종류의 즐거움…. 그런 것들을 자꾸만 떠올리다보니 어느샌가 공부도 멈추게 됐다.


 그러던 와중 운좋게 새로 들어오신 임원 아래에서 일을 하게 됐다. 업무 범위는 기존과 같았지만, 업무의 퀄리티가 아주, 아주 많이 올라갔다. 누구에게 제대로 배운 적 없어 필요한 것만 겨우 쳐내듯 일하던 내게 그분의 등장은 구원처럼 느껴졌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셨고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시는 법이 없었다. 그간 스스로를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온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나의 귀책으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일이 많아진 건 괜찮았다. 하지만 내 잘못을 인정하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정말 괴로웠다. 매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여기에 내 잘못만 있냐고 큰 소리로 변명하고도 싶었다. 그간 쌓아온 평판이, 노력이, 모두 휘발되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다. 회사에 가기가 괴로워 임원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돌아온 답변은 ‘일단 벌어진 일은 해결해 보고 생각하자. 어차피 지금 그만둬봐야 무슨 일 할 건데?’였다. 냉정한 말처럼 보이긴 하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맞는 말이었다. 이미 나도 답을 알고 있었다.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 그분의 진두지휘 아래 끙끙거리며 일을 처리했고, 영원히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문제가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마음이 괴로웠지만, 결국은 도피하지 않고 버텨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고개를 넘어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임원과 나 사이에 한 명의 상사가 더 생겼다. 이 분에게는 실무의 일을 더 디테일하게,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간 대외비로 여겨지던 자료를 함께 분석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엑셀 스킬을 활용해 이런저런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이 분의 입사 이후 나의 업무 또한 좀 더 명확하게 조정되었으므로 이 회사에서 앞으로 2-3년은 더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그 다짐을 꺾는 일이 발생했다. 구체적인 사유를 전부 밝힐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당시 여러 사람이 부당한 일을 겪었고, 결론적으로는 그 턴이 나에게까지 돌아온 것이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앞서 말한 나의 귀책 때문은 아니다. 귀책 여부와 관련 없이 여러 사람이 겪은 일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겪게 될 일이라 생각했지만 운 좋게 만난 좋은 상사들 밑에서 더 오래 일을 배우고 싶어 흐린 눈으로 버텨왔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당장이라도 퇴사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이력서를 썼다. 아직 자신은 없었다. 다른 곳에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다른 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그렇다고 나를 갉아먹는 환경에 나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력서를 제출한 세 곳 모두 면접을 보게 되었고, 이 중 두 군데에 합격해 조금 더 조건이 좋은 곳을 골라 입사 협의를 마쳤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되네.’


 이 회사에 몸담은 기간 동안 퇴사를 세 번 고민했다. 첫 번째는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두 번째는 내 잘못을 회피하고 싶을 때. 세 번째는 회사가 나와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았을 때. 첫 번째에 퇴사했다면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에 퇴사했다면 나는 계속해서 잘못을 회피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세 번째에 퇴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 자신을 틀에 가두고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 세 번의 고민과 세 번의 결정은 지금까지도 내게 손에 꼽힐 만큼 좋았던 선택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회칙 4. 존중하며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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