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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수되기vs하기 싫은 일하기

회칙 3. 피할 수 없다면 뭐라도 찾아내서 즐기기

by 이일리


 고시 공부를 한 것도, 대기업 준비를 한 것도, 그렇다고 군대에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스물일곱이 되었다. 지금이야 그리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좀 늦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남들보다 성과도 없이 시작이 늦었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만 했다. 그러다 아주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수습기간 세 달 동안 최저연봉을 받아야 했지만, 집에서 왕복 네 시간 거리라는 끔찍한 통근 시간과 지옥같은 2호선을 견뎌야 했지만,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분야였지만 어쨌거나 돈을 벌고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이 조금 향상되는 기분이었다.


 사회초년생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과도한 열정으로 일했고, 이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대표님 덕에 입사 반 년만에 연봉이 두 번 올랐다.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원룸(비록 다섯 평짜리 비좁은 원룸이었지만)으로 독립도 했고,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수행하는 업무가 ‘경험은 되지만 경력은 안될 것 같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3년만 채우면 3천만 원에 달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목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든 싫든 계속 다녀야만 했다.


 그런데 입사 후 10개월쯤 되었을 때 어떠한 사유로 인해 내일채움공제 가입이 철회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패닉에 빠졌지만 고용보험 총 가입기간이 12개월 이내라면 가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코앞의 퇴직금이 아쉽긴 했지만 차라리 빠르게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해 다시 3년을 채우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입사 11개월만에 그럭저럭 잘 다니던 첫 회사를 그만두었다.


 갑작스레 맞이한 백수 생활 덕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백수 기간 동안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찾아다닌다는데, 나는 그런 데엔 별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부름에 응해 맛있는 것을 먹고 마셔도 회사에 다닐 때만큼 그 즐거움이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돈 버는 것 외의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온전히 사유하거나 요리하거나 뜨개질하는 것.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에게 취미란 ‘일하는 시간과 휴식하는 시간 사이에’ 잠시 공부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거였다. 더 긴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막연했다. 빨래를 널어두면 걸어다닐 공간이 없는 다섯 평짜리 방에서 나는 좁고 삐그덕거리는 싱글 사이즈 침대에 누워 면접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모아둔 돈이 모두 떨어지기 직전, 정말 다행히도 친구의 제안으로 친구가 다니는 F&B 본사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최종합격하게 되었다. 내 전공과, 직전 회사에서 했던 경험을 조금 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엔 내일채움공제 2년형에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이제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야지,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야지 다짐하며.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전 직영점의 아르바이트생이 차례로 정리됐고, 그 자리를 본사 직원들이 돌아가며 채웠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심시간 이후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다가 저녁 시간에는 직영점에 가서 일하고 퇴근하는 식이었다. 거기까진 아무래도 괜찮았다. 진짜 문제는, 내가 수습기간이라는 점이었다. 입사 두 달차인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수습기간 세 달을 채운 뒤 퇴사하기, 아니면 직영점에서 일하기. 단, 다시 본사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음.


 횟집과 치킨집, 음식점에서 알바해본 경력은 꽤 길었지만 그런 일을 평생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자칫하다간 원치도 않는 일만 하다가 귀한 몇 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만둬봐야 물경력인 데다가, 다른 회사의 상황도 비슷할 테니 갈 만한 곳이 없을 게 뻔했다. 좋든 싫든 해야만 했다. 당장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백수 생활을 하면 또 다시 구렁텅이로 빠져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 했다. 딱 2년만 눈 딱 감고 다니자. 어차피 본사에서 일을 할 때 현장에서의 경험이 있으면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며 그렇게 ‘존버’, 말그대로 ‘존X 버티기’가 시작됐다.


 첫 날은 매우 괴로웠다. 왜인지 몸도 좋지 않은 와중 밀려드는 설거지를 능숙하지 못한 실력으로 겨우 쳐내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몇 번이고 생각했다. 내일채움공제고 뭐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답은 뻔했다. 어차피 지금은 선택지가 없다.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지 말고, 일단 버티자. 대신, 버티는 동안 무언가를 배우자.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두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그러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자.


 그런 결심으로 내가 매장에서 ‘즐겨본’ 일들은 다음과 같다.


- 손님에게 안주와 주류를 소개할 때 멘트를 조금씩 바꿔 특정 메뉴를 주문하도록 유도해보기

- 서비스 안주를 어떤 타이밍에 제공할 때 주류 추가 주문이 더 잘 들어올지 테스트해보기

- 손님이 포크나 나이프를 떨어트렸을 때, 그 소리만 듣고 무슨 집기인지 파악해서(혹시 모르겠다면 둘 다 챙겨서) 손님이 달라고 하기 전에 가져다주기

- 단체 손님이 셀카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드릴지 여쭤보고 직접 찍어드리기

- 매장 인스타그램 운영해보기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를수록 본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옅어졌다. 내가 원치 않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현재의 삶을 ‘임시의 삶’으로 여기며 자주 울적해 했다. 그렇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감각과,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배울 것을 찾아내고 거기에 몰입해 즐기는 나에 대한 기특함도 종종 튀어나왔다. 여기에 현장 매니저와 본사 직원들에게 종종 듣는 ‘일을 잘한다’라는 평이 더해지니, 언제부턴가는 자기효능감이 우울감을 명확하게 꺾기 시작했다. 결국 9개월 만에 나는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본사로 복귀하는, 회사에서 이례적인 성공 신화를 썼다. 퇴사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회사 사람들은 나를 ‘존버의 아이콘’이라 부른다.


 내가 이 경험으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본사 복귀도, ‘존버의 아이콘’이라는 별명도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배우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믿음. 또 다시 어려운 시기가 와도, 이번처럼 꿋꿋한 마음가짐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나에게 남은 가장 값진 성과였다. ‘구몬 다섯 장’이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준 첫 번째 발판이었다면, ‘존버’는 ‘끈기 있고 주체적이며 어려움 속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자아상을 열어준 일종의 포탈이었던 셈이다.



회칙 3. 피할 수 없다면 뭐라도 찾아내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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