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5, 46. 바른생활 슬럼프

by 이일리


[weekly illy] 25.11.03-25.11.16



45주차를 아주 바르게 잘 보내놓고 46주차는 슬럼프를 겪듯 가라앉았다. 어떤 일이 있거나 우울했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딱히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출근 시간 십오 분 전에야 눈을 떴고 저녁 식사 후 산책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점심 러닝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지속했다.


중간에 한번 내 슬럼프의 까닭을 짐작해보기도 했다. 내가 추정한 내용은, 45주차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밤 이스포츠 대회 결승전을 라이브로 보고 한껏 도파민에 취하는 바람에 월요일 아침, 온 정신이 파스스,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점심에는 나가서 러닝을 하고, 집에 돌아와선 채소와 단백질을 챙겨먹고, 퇴근 후엔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영어를 필사하고 저녁 식사를 차리는 일련의 과정에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은은하게 깔려 있고 그 기대감이야말로 일종의 도파민 자극제가 아닐까 하는데, 이미 일요일 밤에 도파민 역치가 확 높아져버리니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내 짐작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놀랍게도 저 내용을 인지하고 나니 퇴근 후에 너저분한 집을 두고 쇼파나 침대에만 드러누워있는 점에 대해 죄책감이 덜 들었다.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가 그래, 어떻게 매일 그렇게 열심히 사니, 가끔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라고 한 말에도 위로를 받았던 것 같고. 추석 연휴 이후 근 한 달을 너무 바르게만 살았으니 일주일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46주차의 목요일쯤엔 슬럼프가 얼추 끝났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까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지옥 같은 마음으로 사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래서 47주차의 시작이자 월요일인 오늘, 다시 일기 쓸 자신을 잃었었지만, 다행히 집을 대충 치우고 이사 후 한번도 연결하지 않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할 만큼은 힘을 얻었기에 이렇게 일기를 쓴다.


아무튼 바른생활 슬럼프는 아마도 극복 완료.

작가의 이전글25-44. 시금치 프리타타와 곱도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