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림 Feb 20. 2022

엄마의 세 시간

나만의 세 시간이, 모두의 세 시간이 되는 날까지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과 인터뷰 글들을 읽으며, 계속 머리 속에서 지우지 못한 것은, 나도 ‘글방’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딘 글방에서 배출한 걸출한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시간들이 그녀들에게 얼마나 큰 자양분이었는지, 어딘의 세계관과 가르침이 얼마나 그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한때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대학 4년 내내 했던 것이 바로 그 합평이었으니까. 대학에 다닐 때는 ‘합평 날짜’를 마감일로 삼아 글을 쓰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평가를 묵묵히 듣고 메모하고, 피드백에 따라 내 글을 고치는 일련의 과정이 정말 밥 먹듯이 일어나는 일상이었는데 이젠 내 글을 읽어줄 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기만 하다. 맹렬하게 공격적인 말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닐 땐 가만히 앉아 맥없이 얻어 터지는 기분도 들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안다. 누군가 시간을 할애하여 내 글을 읽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해주는 것 자체가 돈을 주고라도 구하고 싶은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어딘 글방 출신의 누군가가 글방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인스타에 들어가 신청 하려고 보니, 내가 원하는 요일은 이미 마감이었다. 주말은 아이 때문에 불가능할 듯하여 유일하게 남은 평일인 금요일을 선택해서 신청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금요일은 아이의 치료와 학원 스케줄이 제일 바쁜 날이었다. 머리 속으로 내가 아이를 라이딩해야 하는 시간과 동선이 마구 움직였다. 시간은 오후 3시부터 6. 무려  시간이나 비워놔야 했다. 어떤 학원을, 언제로 옮겨야 할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영어 학원과 미술 학원을 붙여놓고도  시간이 모자라, 어쩔  없이 친정 엄마에게 남은  시간을 부탁했다. 학원들이 끝나고 나면 곧이어 치료 수업도 가야 했 때문에 아이를 라이딩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다행히 엄마도 금요일에 일이 있으나  시간만큼은   있어서  주시기로 했다. 엄마에게 드리는 용돈을 줄인 후에는 웬만하면 엄마를 부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어쩔  없는  시간을 부탁해야만 했다.  그러면 내가 글방 수업 도중에 나와 버리거나,  시간 동안 아이가 엄마 없는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판이었다, 그것도 겨울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시간을 만들어 놓고 나자, 이번엔 장소가 문제였다. 줌 수업으로 진행되는 글방이었지만 줌 수업을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두 시간은 무리 없이 진행한다고 쳐도, 나머지 한 시간이 역시나 골치였다. 그때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나는 글방 수업을 끝까지, 무사히 치를 수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스터디 까페에 있는 스터디룸을 3시간 대여했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은 없었기 때문에 기본으로 2명분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은 공부하는 학생들의 황금시간대였기 때문인지, 비어 있는 스터디룸을 찾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찾은 곳은 3시간에 2만 2천원. 결코 저렴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자, 이제 모든 게 해결된 셈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모두 확보했고, 돈도 미리 입금시켰으니 앞으로 금요일 3시간 동안은 오롯이 나를 위한 글공부의 시간이었던 거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글방지기가 제시한 과제도 이틀이나 먼저 인터넷 까페에 게시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는데, 누가 눌렀는지 좋아요 하트에 숫자 1이 있었다. 나보다 더 좋은 글들도 많은 것 같았는데, 누군가 나의 글을 좋게 봐줬다는 것이 너무 신선한 행복을 안겨 주었다. 글방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의욕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당일이 되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영어 학원에 보낼 채비를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영어 학원이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에 가라고 당부에 당부를 한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는 눈가가 벌게진 채로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미술 학원 오늘은 안 가면 안 돼요?”


그냥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안 되지,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면서 왜 그래, 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외투 입히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자 아이는 이내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미술 학원 가기 싫다고요, 제발, 제발, 제바알.”


아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잘 다니고 있던 미술학원인데 오늘 갑자기 왜? 아이 입에서 ‘제발’이 나오는 순간 나는 사태가 길어질 것임을 직감했다. 이러다가는 영어 학원도 순탄하게 보내지 못할 판이었다. 글방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나, 나는 마음이 매우 다급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애써 침착하게 아이를 설득하며 이유를 물었다.


“왜? 그림 그리는 게 이제 재미없어?”

“아니, 그림은 재밌는데 학원에 가기 싫어. 나 학원에 안 가도 그림 잘 그릴 수 있어요오.”


아이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칭얼거리고 징징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럼 오늘만 일단 참고 잘 다녀와 보자고 아이를 다독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이를 잡아 끌어 문 쪽으로 밀고 있었다. 가기 전까지는 가기 싫다고 난리를 쳐도, 막상 가고 나면 괜찮아지고 그냥 무난하게 넘어간 적도 많았기에 나는 아이의 그 단순함에 기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날만은 통하지 않았다. 영어 학원도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자긴 학원에서 누구랑 같이 와야 하는지를 계속 묻기 시작했다.


“당연히 할머니랑 와야지. 엄마가 미리 말했잖아.”


짜증이 묻은 내 말투에 아이의 울음 소리는 더 커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가기 싫은 학원인데 데리러 오는 사람마저 할머니라고 하니 아이는 돌처럼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째깍째깍 시간은 가고, 등 뒤에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난 잠시 막막해져, 망연히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나는 글방 수업을 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일주일에 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사치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럼 엄마랑 미술학원에서 오는 건 어때, 괜찮아?”

그렇게 말하지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


“그렇게 하면 미술 학원에 갈 수 있겠어?”

“네. 미술학원에 갈 때도 엄마랑 가요?”

“그럼, 엄마랑 가고 엄마랑 오는 거야, 어때?”

“좋아요.”


방구석에 콕 박혀 움직일 줄 모르던 아이가, 드디어 일어섰다. 아이는 태연히 눈물을 닦고 풀어헤쳐져 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리곤 영어 가방을 스스로 챙겨, 가만히 서서 내가 외투 입는 것을 기다렸다. 난 집을 나서기 전, 글방 지기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글방 수업을 듣지 못할 것 같다고, 정말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쳐 내려갔다. 세 시간 예약을 걸어놨던 스터디 까페에 취소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24시간 이전에는 취소할 수 없다는 답변이 날아왔다. 애먼 돈, 2만 2천원이 날아가고 만 것이다. 엄마에게 안 오셔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서야 난 아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얼굴이 티가 날까봐 걱정하던 아이는 씩씩하게 가방을 둘러메고 영어 학원 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나는 어딘이  <활활발발>이라는 책을 들고 근처 커피숍에 가서 읽기 시작했다. 문득 취소가  되는 스터디룸에 가서 책을 읽고 올까 싶었지만 아이 학원에서 너무 멀었고, 무엇보다 거기 가서 앉아 있으면 글방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크게 다가올  같아 그냥 말았다. 나는 너무 성급하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자 애썼던  아닌가 싶은 각이 들었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나는 어쩌면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 것인지도 몰랐다. 시간에 맞춰 나가기 위해 아이를 다그쳤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바깥에 오래 머물게 할까,  고민만 했던  사실이니까. 울고 있는 아이를 억지로 잡아 끌어 문으로 밀고 있었으니까.


 과제를 올렸던 인터넷 까페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결국 글방 수업은 취소를 하기로 했으니, 나는  까페에서 나가야 했다. 글방지기는 나의 과제를 재미있게 읽었다며 아쉽다고 말해 주었다. 감사했다.  말에 정말  위안을 받았다. 누군가  글을 읽어주었다는 ,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피드백을  주었다는 것에서 지금까지의 막막함이 조금은 걷힌 기분이었다.  사이 나의 과제 글에는 좋아요가 2 늘어나 있었다. 누가 눌러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됐다 싶었다. 온전한  시간을 내지도 못했고, 글방 수업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스터디룸 예약비도 날려 버렸지만 그걸로 됐다. 글을 쓰고 싶어하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누군가가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었으니 나는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아직, 아이 옆에 있어야 하는 엄마니까. 그리고 어차피 글은 계속  거니까. 포기하지 않는 , 글방 수업의 기회는 언젠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날을 위해,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오롯이 아이에게만  시간을 내어줄 작정이다. 아마도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나는 ‘나만의  시간 부여받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나만 깨어 있는, 나만의  시간이지만 언젠가 아이가 조금 크고 나면, 많은 사람들과 글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는 ‘모두의  시간 가질  있을 것이다.  갖고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