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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Feb 13. 2022

엄마의 흔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지만, 어디에나 있었다.

본가는 오래된 주택이다. 샷시는 모서리마다 틈이 벌어져 있고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 틈으로 여름엔 훅훅 더운 공기가 들어오고, 겨울엔 칼바람이 들이치는 탓에 실내에 있어도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무렵이면, 엄마의 난방비 걱정은 시작된다. 보일러를 하루 종일 틀어 놓아도 따뜻할까 말까인데, 난방비는 벌써 20만원을 웃돌기 때문이다.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뜨거워 들썩거려야 할 만큼 방을 데워도 코끝은 늘 시린 곳. 말을 할 때마다 입김이 폴폴 새어나오는 곳. 그래서 집에서도 경량 패딩을 겹쳐 입고, 24시간 내내 이불을 깔아놔야 하는 곳.


그곳에서 겨울에 샤워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미리 더운 물을 한참 틀어 욕실 안을 데워 놓아도 막상 옷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서면 한기가 맨 살갗을 감싸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비누칠을 하느라 시간을 좀 지체하다 보면 여지없이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비누칠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신 뜨거운 물을 몸에 부어줘야 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공중 목욕탕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겨울에 기본적인 머리 감기와 세수 외에 샤워를 잘 안 하게 된다고 하셨다.


코로나가 우릴 덮치고 이젠 공중 목욕탕에 가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때를 밀어줘야 하는 우리 모녀는 처음에 각질이 올라오는 피부 상태에 적응을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각자 살 길을 찾았다. 엄마는 사람이 없는 목욕탕만 골라 목욕을 다녔고, 나는 집에서 매일 샤워하는 것으로 이전의 생활을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사람이 없는 목욕탕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자, 엄마의 몸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우리 집에 아이를 봐주러 오시는 날 우리 집 욕실에서 목욕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셨다. 굳이 물어보지 않고도 그냥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엄마는 이 집이 아직도 ‘딸이 사는 사위의 집’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엄마는 때 목욕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우리 집에 왔다. 애용하는 때수건과 발 각질 밀개, 갈아 입을 속옷, 때비누까지 살뜰히 챙겨 세면대 위 젠다이에 펼쳐놓았다. 때마침 내가 반신욕을 하려고 사 놓은 특대형 욕조가 있어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때를 불리고 중간에 나를 불러 등까지 야무지게 밀었다. 난 엄마가 목욕을 하는 도중, 일을 하느라 급하게 나가야 했는데, 엄마는 갑자기 사위가 퇴근해서 들어올까봐 걱정을 했다. 남편은 이미 야근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아마도 엄마는 혹시라도 사위가 올까 싶어 씻다가도 중간중간 바깥에서 나는 문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다.


퇴근 후, 나는 엄마를 배웅하자마자 아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아이 저녁 시간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짬이 나지 않았다. 아이 입에 밥 한 술이 들어가는 걸 보고나서야 나는 간신히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조금 전, 엄마가 목욕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욕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최대한 그곳에서 목욕 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 티가 역력했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었고 욕조도 언제나처럼 평소의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바닥과 벽면은 물기 하나 없이 완벽하게 건조된 상태였다.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완벽히 지운 그 공간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온전히 엄마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렇게 깨끗하게 욕실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바닥에 젖은 발자국을 남기기 마련이고, 머리카락은 떨어뜨리는 게 일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마저도 허락지 않았다. 늘 딸과 사위에게 폐가 될까 숨죽이고,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던 양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 익숙한 엄마였다.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엄마는 늘 ‘을’의 입장에서 나와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에게 생활비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현재 상황이 엄마를 그렇게 주눅 들게 했는지도 몰랐다. 엄마가 다녀간 후, 건망증이 심한 내가 어떤 물건의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하면 제일 먼저 날아오는 답변은 “난 원래 있던 자리에 놨어.”였다. 내가 엄마를 탓하거나 추궁하려고 전화한 것이 아님에도 엄마는 내 질문에 늘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엄마가 목욕을 하고 간 그날도, 나는 엄마에게 청소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청소는 내가 할게’라고 지나가듯 던졌던 내 말이 강요보다 더 무겁게 엄마의 뇌리에 꽂혔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엄마의 행위는 오히려 그 공간을 완전하게 복원함으로써 더 강력하게 엄마의 흔적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난 욕실 어디에서도 엄마를 볼 수 없었지만, 구석구석에서 엄마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훗날 내가 정말 엄마를   없는 어떤 순간이 왔을 ,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엄마가 있을까봐. 그래서 엄마가 곁에 있을  좀더 여유롭게 그녀를 대하지 것을 후회하고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후회가 죽을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을까봐 벌써부터 두려워졌다. 혹시라도 다음에  엄마가 목욕을 하러 오면 그땐 밖에서 누가 올까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여유롭게 목욕을 하라고, 욕실 바닥에도 쿵쿵 발자국 도장을 찍고, 떨어진 머리카락도 그대로 두라고 말해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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