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무엇이든, 네 탓이 아니야
“숲님은 여름날의 호수 같은 사람입니다.”
한창 믿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듬뿍 주었다가, 뒤통수를 맞고 상처만 받아 아파하던 시기가 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며, 난 관계가 틀어지거나 예상과 어긋나 버리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곤 했다.
내가 했던 말 중에 실수한 게 있었나? 지난 번 나의 그 행동이 너무 과했던 걸까? 그때 이러이러하게 했어야 했는데, 너무 부족했던 걸까? 등등 지난 시간을 통째로 복기하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곱씹어 보고 나면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발견되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억지로 이유를 찾아내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이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을 땐 막연히 절망스러워졌다. 나 스스로 무력감에 짓눌려 다시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숱하게 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마음’ 아니던가. 난 번번이 아파하면서도 마음을 주고, 상처받고 다짐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명동에 아주 유명한 철학관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번 내 팔자에 대해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찾아갔다. 생각보다 젊은 아저씨였는데, 그 분이 말해준 내 사주는 꽤나 좋은 것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 의아하던 찰나, 아저씨는 나에게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제 사주에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것도 있나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는 내가 스스로 우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만큼 절박했던 것도 같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 제가 보니 숲님은 여름날의 호수 운을 타고 태어나셨어요.”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다짜고짜 묻는 내게 철학관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글쎄요, 제가 한 번 말씀드릴 테니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저씨의 말을 전하자면 대략 이러했다.
“여름날의 호수는 아주 잔잔하지요.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기도 하지만 그때뿐, 평소엔 아주 고요합니다. 숲님은 그렇게 평화롭고 잔잔한 분이에요. 주변에 꽃과 풀도 많아서 무척이나 아름답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여름날엔 또 유독 호수같은 물가를 많이 찾는 법이거든요. 찾아와서 사람들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자기들이 갖고 있던 근심과 걱정을 모두 잊어버립니다. 여기서 풀고 가는 거죠. 숲님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줍니다.”
여기까진 아주 좋은 것 아닌가? 실제로 사람들은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늘 노력해 왔었다. 그게 나름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던가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고 나면 그냥 떠나버려요. 계속 호수의 곁에 있는 게 아니라, 정화된 마음 상태 그대로 아주 가볍고 행복하게 자기들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자기들이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들은 모두 남겨 놓은 채 말이지요. 그럼 그 쓰레기들은 누구의 몫이 되겠습니까? 그건 모두 호수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찌꺼기가 되는 거예요. 그뿐인가요, 잔잔했던 호수에 이유없이 돌팔매를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그 자리에 언제나 묵묵히 있었던 호수는 별안간 큰 물결이 일어나 꽤 오랫동안 그 진동을 혼자 품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이게, 숲님이 타고난 운이에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난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언뜻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말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동안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뭔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운명이어서 사람들이 떠나간 것이라는 말이 나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에 더 이상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행복해진 채로 떠난다고 하니 그게 또 얼마나 다행인지. 난 그저, 다음에 또 내게 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때부터 난 내 잘못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마음을 준 상대라면 누구에게든 최선을 다하고 그 관계가 끝난다고 해도 미련을 갖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의 연이 거기까지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중심을 지키며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다. 늘 끝을 생각하고 만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끝이 온다 하더라도 비교적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철학관 아저씨가 한 말이 모두 들어 맞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30대가 되면 사람으로 고생할 일도 끝날 거란 말은 어느 정도 맞는 것도 같다. 그게 그럴 운명이어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