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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Jan 16. 2022

아이의 진단명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밤에도, 난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셨나요?”


상담소 소장은 말을 마치고 한참이나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 이야기를 들은 내가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마주보고 있기가 조금은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소장의 눈빛이 “당신 자식이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은 어디서 뭘 한 건가요?”라고 나를 책망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의 아이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려 했지만 별다른 문제점은 느낄 수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반기는 아이는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었고, 목욕을 시킬 때의 개구진 얼굴, 잠들었을 때 꼭 다문 입매와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뻗은 팔 다리가 너무 예뻤던 기억, 또는 뭔가를 먹느라 오물오물 거리는 입모양이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조금 아이가 산만하고 느리긴 해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아이의 진단명은 ADHD, 경계성 지능 ‘장애’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적 장애 3급. 소장은 이 ‘장애’라는 명칭을 유난히 강조하며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아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아이는 보통 경계 수준의 지능으로도 올라오기 어렵다며 나에게 경고를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일부러 더 강하게 말한 것일 수도 있는데, 보통 엄마들은 이 정도 말할 때쯤 눈물을 흘리는 모양인지 소장은 은근슬쩍 내 앞으로 휴지를 밀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마치 울어야 한다는 강요처럼 느껴져 오히려 거부감이 일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서둘러 아이의 치료 스케줄을 잡고, 많은 비용을 지불한 채 상담소를 나왔다. 뭔가를 하긴 했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이렇게 시작하면 되는 건지 얼떨떨했다. 그 당시 나는 상담소를 가기 전에 이미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주기 위해 여러 학원의 상담을 신청해 놓은 상태여서 상담소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주부터 여기저기 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아이에게 막연히 품어왔던 나의 기대는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갔다. 사고력 학원에서는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레벨테스트 자체를 거부당했고, 3년 간 원어민이 있는 영어 놀이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단 5분만에 최하위반을 배정받았다. 테스트 방에 들어간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테스트 불가 판정을 받았다. 또래 아이들과의 만남에선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혼자 겉돌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작고 왜소한 아이는 이리저리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곤 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강사로서, 또는 엄마나 아내로서 역할 수행을 꽤나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일을 하면서 일정한 주기로 슬럼프 같은 것이 오긴 했지만  기복 없이  일로   있었고, 15 넘게 함께  남편과도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이도 그냥 조금 ‘느리고 순한성향이었을  다른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여겨왔던 나의 일상은  며칠만에 급속도로 균열이 가고, 갈라진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든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는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왔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오만하게도 나는  의지대로 하지 못할  아무 것도 없다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있다고 여겨왔던 거다. 그러나  능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한계는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이건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그냥 살아야지. 두 눈 딱 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수밖에. 뭔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에 부딪혔을 땐 그것을 전복시킬 특별한 비결 따윈 없는 것 같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 비 오는 아스팔트 위의 젖은 나뭇잎처럼 끝까지 버티는 것, 그것뿐이다.


그 날 이후 열심히 운영하던 교습소를 접고, 일을 줄인 채 아이의 치료와 학업에 매달린지 약 1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상담소와 달리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방문했던 병원의 원장은 아이가 실제로 높은 집중력을 지니고 있다며, 검사 결과는 아이의 산만함 때문에 낮게 나온 것일 뿐이라는 다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게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지금 아이는 소장의 말과 달리 '경계성 지능'이 아닌, '평균 지능' 수준까지 올라왔고 소규모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제법 혼자서 영어 문장도 읽고, 쓸 줄 아는 상태가 되었다. 이따금 불평을 하긴 하지만 집에서 수학 문제집을 꼬박꼬박 풀고 있고, 잠들기 전 매일 자기가 만든 책도 읽어준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나는 아이가 혼자서 제 몸만한 가방을 멘 채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에도, 글자를 쓰고 쉬운 연산 문제를 맞추는 것 하나에도 늘 감동을 받는다. 정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에겐 당연한 것이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제법 잘 버텨주고 있는 아이에게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


나는 그동안 강사와 엄마라는 역할 중 강사에만 치우쳐 사느라, 내 자식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라는 역할이고, 나는 매일 그 역할에 충실히 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아직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눈 앞에 닥친 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그 하루하루의 시간이 쌓여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딘가에 나를 데려다 놓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밤'이지만, 이렇게 엄마로서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내일 또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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