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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Jan 14. 2022

엄마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두려움으로 아이를 통제하려 하지 마세요

“엄마는 많이 늙었어요?”


요즘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아무래도 요즘 아이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늙어서 죽는 것인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늙었는가’와 ‘내가 지금 죽는가’에 대해 아이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아직 나이에 대한 개념, 젊고 늙는 것에 대한 정도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탓에 아이는 내가 얼마나 늙고 있는지를 매일같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 시초는 친정 엄마와 함께 보던 드라마였다. 아이가 친정 엄마와 드라마를 보던 중, 극 속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자 아이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법 진지하게 묻더란다. 죽는다는 게 무엇이기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구슬프게 우는 건지 아이는 궁금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게 또 귀여워서 나름 사실적으로 설명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늙거나 아프면 누구나 죽게 된단다. 죽으면 땅에 묻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살은 썩어서 사라지고 뼈만 남게 돼. 그리고 그 뼈도 결국엔 바스라져 흙으로 돌아가지.”


친정 엄마는 사람들이 죽으면 하늘 나라로 간다거나, 죽어도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다는 감성적인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그런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못하는 분이다. 그래서 그저 죽어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일단 사람 얼굴을 흙으로 덮는다는 것부터가 공포였고, 그 살이 썩는다는 것도 아이는 무서웠던 것 같았다. 혼자 흙더미에 묻혀 깜깜한 밤이 되어도 아무도 꺼내주지 않는 게 너무 무섭다고 했다. 묻힌 이를 두고 사람들이 모두 산을 내려오는 게 너무 슬프다고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나의 ‘늙음’을 확인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에도 아이를 씻기려고 옷을 벗기는데, 목욕이 싫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아이 탓에 기운이 쏘옥 빠지고 말았다. 빨리 아이를 씻기고 재워야 나도 뭔가 내 일을 할 수 있는데, 몸이 재빠른 아이가 잡힐 듯 잡힐 듯 손에 잡히지 않자 은근히 짜증이 나고 부아가 치밀었다.


“아이고,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그러자 아이는 달리기를 멈추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내 모습에서 무엇이 늙었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듯 내 얼굴과 손을, 발을 샅샅이 훑어 보았다. 그러더니 아이는 이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코와 눈두덩이가 빨개져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늙게 해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럼 엄마 이제 죽는 거예요? 엄마 죽어요?”


너무나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아이의 두려움을 건드린  같아 아차 싶었다. 가련하게도 아이는 진심으로 내가 죽을까봐 염려하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아이에게 정말 내가 늙는  아님을 설명했다. ‘늙는다 늙어라는 나의 말은,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미이고, 스트레스는 화가 많이 나고 마음이 괴롭다는 의미라고 2 3차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때문에  늙는  같은 느낌을 받는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울음이 잦아들고 가슴의 들썩거림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난 아이들의 두려움을 바탕으로 그들을 통제하려는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아이가 자꾸 머리를 움직여 자르기 쉽지 않을 경우 “너, 그렇게 움직이다 귀 잘린다!”라고 엄포를 놓는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든지 아이를 얼르고 달래서 긍정적인 말로 다룰 수 있는데 불안함과 두려움을 증폭시키면서 통제하려는 것은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하는 초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어릴 적, 나는 엄마가 나의 ‘두려움’을 기반으로 나를 통제하려 드는 게 참 싫었다. 사실 엄마는 아이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놀리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 하는 분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무서워 하거나 울상을 지으면 귀엽다면서 즐거워 하셨지만, 어린 마음에 난 그런 엄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악하다고 생각했었다.


8살 무렵이었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에게 편지를 쓴 나는, 편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아끼던 연필을 봉투에 함께 넣어 우체통에 넣었다. 늘 편지를 보내기 전 엄마에게 물어보고, 검사까지 받고서 보내다가 처음으로 내가 단독 행동을 한 거였다. 그러나 편지 외에 다른 물건이 들어 있던 까닭에 그 편지는 당연히 우리 집으로 반송되었는데 내가 학교에 다녀온 사이 반송된 편지를 본 엄마는 그 일로 나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째, 니가 편지를 보내는 법을 어기는 바람에 편지가 도로 왔다.”


실제로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다시 돌아와 내 눈 앞에 놓여 있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특히 ‘법을 어겨서’라는 엄마의 말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엄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 경찰들이 집으로 들이닥칠 거고, 나는 수갑을 찬 채 끌려 가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며칠 뒤에는 내가 법을 어긴 것 때문에 재판도 받아야 한다고 엄마는 한껏 과장하여 나를 놀려댔다. 너무도 은밀하게,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게 사실일 거라 철썩같이 믿어버렸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렸는데,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장난이었다고 밝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엄마한테 물어보고 편지를 보냈어야지. 이제부터 엄마 말 안 들으면 너 감옥 간다.”


난 그렇게 끝까지 나에게 장난이랍시고 겁을 잔뜩 줬던 엄마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한동안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자 엄마는 그게 좋으셨던지 그 이후로도 꽤나 그럴싸한 거짓말로 나의 공포심을 자아냈었다. 그래서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엄마의 말에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나였는데, 지금은 너무 부끄럽게도 엄마의 모습 그대로, 난 겁을 주면서 아이를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늙는 것, 내가 죽는 것에 대해 아이가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아이가 말을 심하게 안 들을 때마다 나는 그걸 종종 이용했다. 오늘만 해도 영어 학원을 안 가겠다고 때를 쓰는 아이에게 ‘너가 이러면, 엄마가 스트레스 받아’라는 말을 무기처럼 내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엄마가 늙고, 그럼 엄마는 죽게 된다, 라는 사실이 실제처럼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아이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말 않고 영어 학원 가방을 든 채 집을 나섰다. 집에 와서도 밥을 먹지 않고 라면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와 대치를 하다가 내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숙이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엄마, 스트레스 받았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역시 곧장 라면을 포기했다. 나는 이 ‘스트레스의 신통한(?) 효과’에 놀라면서도 그걸 자꾸 이용하려 드는 나의 간사함에 치를 떨었다. 조그마한 아이의 얼굴 속, 검은 눈동자가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라는 말에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결국 필요할 때마다 그 말을 내뱉는 나에게 혐오감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이다. 나는 역시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아이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모자란 엄마’라는 자괴감도 느껴졌다.


소위 약발이 떨어짐에 따라 아이가 산만해지는 시간대가 되면, 나의 통제력에 한계를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이제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아이 앞에서 내뱉지 않을 작정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극한에 이르는 상황이 와도 그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는 일이 없도록 나 스스로를 통제하려 한다. 공포심과 두려움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려는 것은 가장 편하지만, 가장 치사하고 졸렬한 방식이기도 하니까. 내가 목숨보다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에게까지 그 방식을 쓰는 건 엄마로서 자격미달이니까.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사랑으로. 재촉과 다그침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미간의 주름과 부릅뜬 눈이 아니라 입가의 미소로. 그렇게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의 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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