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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Jan 10. 2022

야식에 대한 변명

새끼가 굶는데, 나만 먹을 순 없잖아요


내가 아이에 대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먹거리이다. 가뜩이나 편식이 심한데, 감각도 예민한 편이라서 식감이 달라지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식을 먹던 시기만 해도 아무 거나 주는 대로 잘 받아먹고 볼살이 통통하던 아이였다. 그러나 점점 거부하는 식재료가 많아지면서 자기가 꽂히는 음식에만 질릴 때까지 집착하기 시작했다. 볶음밥에 꽂혀 하루가 멀다 하고 볶음밥만 찾다가도 그게 질려 버리면 하루 아침에 고기만 찾는 아이가 되어 버리는 식이다. 언제 어떤 음식에 질릴지, 혹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버리는 음식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좋아한다고 잔뜩 사 두었다가 거기에 질리기라도 해 버리면, 남은 음식물 처리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는 것이다. 남편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았다고 억지로 먹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으면 그냥 버려!”


너무도 쉽게 말해 버리는 남편을 노려 보며, “널 닮아서 애 입맛이 저런가 보다.”라고 속으로 뇌까렸다. 한때 아이가 꽂혀서 잔뜩 사 뒀던 ‘쫄병 스낵’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아직도 부엌 구석에 쳐박혀 있다. 이따금 정 먹을 것이 없거나 하나라도 남은 과자를 처리하고 싶을 때마다 꾸역꾸역 먹고 있는 참이다. 아무 거나 잘 먹는 아이를 만들겠다며 의지가 충천하여 아이가 거부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인 날도 있었다. 그러나 입 안에 넣는 것까지는 성공을 해도 아이는 이내 구역질을 하며 입 안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내 버렸다. 그럼 지금껏 애써 먹여왔던 것까지도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젠 내 욕심을 버리고, 가능한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아이를 구슬러가며 먹이는 중이다.


그러던 나에게 더 큰 장벽이 생겼다. 바로 ADHD 약이다. 약을 복용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인해 입맛을 잃어 아이는 ‘더 먹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ad약의 효력은 이론상 4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8시간 정도는 족히 가는 듯해 보였다. 학교 수업을 위해 오전 8시 30분 정도에 약을 먹이고 나면, 오후 4시까지는 집중력이나 차분함의 정도가 괜찮게 유지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입맛 역시 극도로 줄어들어서 그 시간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 들었다. 그렇게 좋아해서 환장하는 딸기조차 겨우 두 세 개 정도 먹고 그칠 뿐이었다. 그러다 소위 약발이 떨어지는 시간, 그러니까 저녁 8시쯤이 되면 또 미친 듯이 먹을 것을 찾는다. 그렇지만 원체 입이 짧은 아이라 그마저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너무너무 먹고 싶어해서 만들어줘도 몇 입 먹고 그치는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아이에게 약과 밥을 먹이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물을 먹이는 순간까지 온통 ‘아이에게 먹일 음식’ 생각뿐이다. 매 끼니를 고민하지만, 막상 만들어 놔도 늘 먹던 것만 먹는 아이 때문에 이젠 요리에 대한 의욕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그때부터다. 나의 야식이 시작된 것은. 난 밤 11시만 되면 어김없이 무언가를 먹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 아이가 10시에서 10시 반쯤 잠들고 나서야 난 거실로 나올 수 있었는데, 멀쩡하다가도 그때부터 미친 듯이 허기가 몰려 왔다. 처음엔 냉동만두 두 세 개로 가볍게 시작했던 야식은 점차 스케일이 커져서 즉석 떡볶이, 숯불 곱창 볶음, 물회, 탕수육 등 무거운 메뉴로 옮겨갔다. 밤이 되면 배달비가 더 비싸져서 한 달 동안 배달식으로 나가는 돈도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늦게 잠을 자는데도 음식은 미쳐  소화되지 않은 때가 많았다. 다음 날을 위해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하다 보니 아침이면 속이 더부룩하고 얼굴이 띵띵 부은 채로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10 들어서는 먹는 족족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달고 살고, 자주 체하는 탓에 결국 병원을 방문하고 말았다. 이미 식도염은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만성으로 변해 버렸으며, 위에는 용종도 발견되었다. 밤에 먹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것저것 음식을  챙겨 먹은 날도 있었지만 이게 웬걸, 아이를 재우려고 침대에 눕자마자 미칠 듯한 허기가 몰려 왔다. 아이를 운답시고 사방의 불은 모두  놓고서도 배달 앱은  놓은  야식꺼리를 검색했다. 결국 애가  잠이 들었을   이미 곱창볶음을 결제하고 있었다.


“너, 낮에 좀 먹어.”


내가 라볶이를 시켰다고 남편에게 말하며, 막 아이 방에서 나오는데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나 낮에도 먹었는데? 라고 말하자 남편은 뭘 먹었는지 재차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침에 아이가 남긴 반 그릇의 밥과 계란 한 조각 외에 먹은 것이 없었다. 아, 물론 커피는 줄창 마셔댔던 것 같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자 남편은 밤에 먹지 말고, 낮에 밥을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다이어리에 내가 먹는 음식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기록을 한 뒤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대체로 아이가 먹고 남은 음식, 아니면 커피와 빵으로 때운 것들이 많았다. 그 빵들도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가 있을 때, 빨리 끼니를 때우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언제든 나가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밥과 반찬을 차리고 천천히 여유있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먹지 않아 쫄쫄 굶고 있는데, 나는 우걱우걱 내 배를 채운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일단 나도 사람인지라 내 배가 부르면, 아이가 배고플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하고 아이 끼니를 채우는 것에 대해 급한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 게다가 밥을 또 차려야 하는 것에 귀찮음도 느낄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허기는 늘상 아이가 자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이 격하게 밀려왔다.


지금은 그래도 내 끼니는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반찬을 여러 개 꺼내 먹진 않아도, 가능하면 밥을 먹으려고 애쓴다는 말이다. 야식도, 배달 음식 대신 아이가 남긴 ‘쫄병스낵’으로 그럭저럭 해결하는 중이다. 다행인 건 야식 배달비가 많이 줄었고, 늘 골칫거리였던 과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아직도 먹는 일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일단 애 입에 뭔가가 들어가고, 입을 오물거리는 걸 봐야 마음 편히 먹을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나의 고민과 습관은 아이가 스스로 세상에 나가 제 구실을 하면서 살게 될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언제쯤 아이나 나나 먹는 고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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