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졌던 때가 언제였을까...
그 기억이 희미할 만큼 오래전 우리는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친해졌다. 몇 년을 함께 의지하며 공부했지만 연속되는 불합격의 짐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고, 그 후 몇 년 뒤 언니가 시험에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기나긴 수험생활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합격한 언니가 당연히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철밥통 직장을 그만두고 베이커리에 푹 빠져 빵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는 걸 sns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머, 이 언니 진짜 대단하네...' 순간 놀랐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그래, 맞아. 언니가 이렇게 대찬 구석이 있었지. 역시 언니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 언니가 안 할 거면 그 자리 내가 가면 좋겠구먼...'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가끔 sns로 언니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행복한 모습으로 빵을 척척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띠링' 메시지가 왔다. 언니였다.
'잘 지내지? 나 요즘 부산에서 빵 배우고 있는데 이번 달이 마지막이야. 혹시 시간 되면 그전에 얼굴 한 번 보자.'
서울과 부산이면 기차로 2시간, 비행기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그래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2번은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거리는 각자의 생활 속에서 꽤나 머나먼 거리였다.
'좋아요! 언니.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나의 고단한 수험생활을 함께했던 사람과 짧은 시간이지만 진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약속한 그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핸드폰 네비를 켰다. 운전해서 처음 가보는 곳이라 살짝 긴장되기는 했지만 설렘이 더 컸다.
순조롭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내 언니와 상봉!
"어머! 이 언니 늙지도 않았네."
"오랜만이야. 너도 마찬가지네 뭐."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갔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며칠 전에 만나고 또 보는 것처럼 어색함 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각자 지나 온 시간들을 이야기 나누며 신나게 웃었다.
언니는 우연히 빵을 배우게 되었는데 정말 재밌었다고 했다. 항상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며 좀 더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게도 오픈했다고 한다. 지금은 부산과 서울의 성수동에서 수업을 배우고 있고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고 하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언니의 얼굴엔 후회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빵을 배우고 가게를 오픈하고 다시 자기가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움의 깊이를 위해 24년엔 어학연수도 계획하고 있다고.
"언니,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망설임 없이 척척 결정할 수 있어요? 그래도 언니가 정말 원하는 걸 찾아서 다행이야. 난 아직도 찾고 있는 중"
"왜, 너 최근에 글 쓰고 책 냈다며. 나도 책 쓰고 싶어."
"그건 그냥 어쩌다 보니 다 함께 쓴 책이고 졸작이라."
"글쓰기는 꾸준하게 하고, 관심 가는 건 다양하게 도전해봐. 그러다가 나처럼 정말 하고 싶은 걸 찾게 되는 거야. 우선 매일 짧게라도 글을 써."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게을러서 미루고 있는 나에게 언니가 꾸준함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꾸준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까지 먹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아쉽기는 했지만 요즘은 워낙 sns가 잘되어 있으니 상대방의 일상을 매일 마주할 수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게으름과 꾸준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게으르면서도 성실한 사람. 아이러니하다.
꾸준함의 힘을 믿어보려고 한다.
내가 관심 가는 분야를 꾸준히 하다 보면 깊이가 생기지 않을까.
언니랑 나는 10년 뒤에 각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것저것 얕게 하기보다는 한 가지를 야무지고 깊게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헤어짐의 아쉬움보다 설렘 가득한 그녀와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