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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r 13. 2023

무그 신시사이저의 마법사

키스 에머슨 (E.L.P.) 1944.11.2 – 2016.3.11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의 음반들을 꺼내는 일은 좀체 없지만, 한때는 그의 음악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열광한 적이 있다. 그는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 가운데에서도 어딘가 유별났다. 그에게 클래식과 재즈는 록 음악의 다양성을 위한 풍성한 재료였으며, 때로 그것들을 아예 집어 삼켜버렸다.


Michael Putlan, Getty Images


  그 결과는 종종 난해한 음악성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찬반을 불러일으켰지만, E.L.P(Emerson, Lake & Palmer)의 탁월한 연주력이 각종 논란을 불식시켰다. 밴드 멤버 그레그 레이크와 칼 파머(Carl Palmer)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그의 키보드는 공허한 자기과시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밴드 초기에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공연은 그들의 활동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다. 90년대 초 나는 그 공연을 어느 카페에서 비디오로 관람했다. 그는 마치 광인처럼 온갖 전자악기를 동원해 미친듯이 연주에 몰입했다. 어디선가 전해 들은 ‘괴팍한 성격의 무그 신시사이저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머리 속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후 E.L.P의 앨범들을 속속 구해 듣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다소 현학적이고 허세 가득한 구성의 대곡도 적잖게 있었지만 <C’est la Vie> 같은 아름다운 발라드도 있었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그레그 레이크의 ‘중화작용’ 덕분일 것이다.


  솔로 앨범 중에는 ‘Honky’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바흐의 클래식과 이국적인 타악기 소리가 어우러진 사운드의 향연이 꽤나 이색적이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그의 신시사이저에 귀 기울이며 동경의 나날을 보내던 때가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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