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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r 13. 2023

고전의 역설

찰리 파커 1920.8.29 – 1955.3.12

  모두가 인정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고전이라는 역설은 음악에서도 해당된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연주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내 경우, 사보이(Savoy)와 다이얼(Dial), 버브(Verve) 등 여러 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자랑스럽게 쌓아 두고 있지만 막상 손이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서재 귀퉁이에 꽂혀 있는 먼지 쌓인 셰익스피어 전집의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마음먹고 음반을 꺼내 듣더라도 어딘가 불편하고 헛헛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당시 전위의 최전선이던 비밥 재즈가 현재라고 편하게만 들릴 리는 없겠지만.



  여기엔 고전이 갖는 숙명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찰리 파커를 한 장의 온전한 ‘앨범’의 형태로 만나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 본다. 그동안 발매된 대부분의 음반들은 실상 그의 녹음을 단순 채집해서 기계적으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표작이라 일컫는 ‘Bird and Diz’도 애초부터 앨범으로 기획된 게 아니다. 1940년대에는 앨범 제작에 요구되는 ‘프로듀스’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게다가 레코딩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던 과도기에 이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음질, 이따금 정신없이 빠르고 난해함으로 치닫는 연주 스타일도 감상의 장애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반의 시대가 저무는 와중에도 찰리 파커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편집 앨범 한 장이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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