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맥린 1931.3.17 – 2006.3.31
찰리 파커 이후 알토 색소폰 주자로서 재키 맥린(Jackie McLean)만큼 지적인 카리스마로 재즈의 문법을 탐구해온 인물은 흔치 않다. 좀 더 급진적이었던 동시대의 오넷 콜먼 정도가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두 사람은 하드 밥을 기조로 재즈의 확장성을 고민했다. 콜먼이 프리 재즈로 탈주했다면, 재키는 극단성을 배제하고 하드 밥의 범주 안에서 혁신을 도모했다. 일종의 절충주의였으며, 포스트 밥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리더로 발표한 앨범들이 그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레퍼런스다. 그를 믿고 꾸준히 지지해준 블루노트는 그의 앨범 제목처럼, ‘새로운 토양(New Soil)’이었다. 그의 학구적 면모는 1979년 다큐멘터리 ‘화성인 재키 맥린’에서도 세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재즈가 미국의 클래식 음악이 되어야한다고 독려하고 당대의 초현실주의자 선 라(Sun Ra)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재즈를 대하는 개방적 태도와 진지함은 그의 타고난 명민함에도 있겠지만, 20대부터 동료로 지냈던 인물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재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이드 맨으로 1950년대를 맞이했고 찰스 밍거스의 1956년 앨범 ‘직립 원인’에도 참여했으며 아트 블레이키의 밴드에서도 수 년간 재직했다. 특히 밍거스와 함께했던 혁신성에 대한 고민은 짧은 기간이나마 깊은 영감을 얻었던 계기가 되었다. 모던 재즈를 구심점으로 삼으며 끊임없이 원심력을 가속화했던 그들은 장르의 경계를 맴도는 ‘패스파인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