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리치 1917.9.30 – 1987.4.2
버디 리치(Buddy Rich)에겐 늘 세계 최고의 드러머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재즈 팬은 거의 못 봤다. 아트 블레이키나 맥스 로치에 대해선 그토록 열광하는 이도 정작 버디 리치의 음악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거나 애써 무시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그는 분명 재즈 드러머고 자신의 빅밴드를 이끌며 수많은 음반을 남겼다. 왜 그런 간극이 벌어졌을까? 우선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자.
그는 40년대부터 토미 도시(Tommy Dorsey) 악단 등 빅밴드의 드러머로 경력을 시작해 여러 세션 활동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밴드를 꾸리게 된다. 그 세션 중에는 1950년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의 ‘Bird and Diz’ 녹음도 있다. 그는 화려한 테크닉과 쇼맨십을 무기로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만, 당시 급변하는 재즈계의 주류로 인식되진 않았다. 더욱이 잦은 TV쇼 출연으로 엔터테이너로서의 입지를 갖추면서 아티스트의 본령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얻은 것이다. 물론 당시 대중적인 인기로는 따라올 재즈 맨이 없었다. 이 대목이 루이 암스트롱의 처지와 포개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예술가와 연예인을 오가며 대중들과 가까이 호흡한 일종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빅밴드 리더로서 이룬 성취는 차치하더라도, 그의 드럼이 당대의 재즈와 록 음악에 끼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쩌면 그로 인해 훗날 로큰롤의 대공습이라는 역설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나마 영화 ‘위플래쉬’ 덕분에 그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반가우나 그마저도 피상적인 인상에 머문 점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