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세헌 Apr 04. 2023

대세가 되어버린 대안

커트 코베인 1967.2.20 – 1994.4.5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죽음은 너바나(Nirvana)의 등장 이상으로 충격이었다. 그 충격파는 그가 생전에 발휘했던 영향력을 훨씬 뛰어 넘었다. 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별이 폭발할 때이듯, 존재가 끌어들이는 힘보다 소멸이 밀어내는 파장이 더 클 때도 있다. 그는 이미 록 스타를 넘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기에 그 파장은 단지 음악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런지 룩의 유행은 패션과 뷰티의 의제가 되었고 사회학적으로도 그의 죽음은 논의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내 음악취향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바나가 한창 활동할 무렵에는 그에게 다소 시큰둥한 입장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낯선 것에 대한 반사적인 거부반응이 컸던 것 같다. 내 감각이 둔했던 탓이리라. 하지만 해외 방송채널이나 잡지를 보면서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느덧 ‘대안’은 대세가 되었고, 대세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음악 여정이 시작됐다. 거기서 1980년대의 픽시스(Pixies)와 R.E.M.을 만났고 1970년대의 이기 팝(Iggy Pop)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사망하고 ‘대안’은 어느덧 주류가 되었다. 서울의 ‘홍대 앞’에선 네오 펑크, 브릿 팝 같은 대안적 주류 음악을 트는 드럭과 스팽글 같은 클럽이 생기고, 인디 밴드들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너바나의 등장에서 그의 죽음까지 걸린 기간은 5년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1990년대 록 음악의 풍경을 바꿔 놓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녹슬지 않는 스캣 대마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