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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곡

폴 블레이 Paul Bley 1932.11.10 – 2016.1.3

by 황세헌

현대 재즈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낀 지도 오래다. 혹시 그것을 재즈의 진화라고 말한다면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진화가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변화의 결과라고 볼 때 오늘날 재즈는 그 자체로 생존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90년대에 신전통주의라는 복고 바람이 불었던 것도 재즈에 대한 집단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한편, 이미 70년대부터 기존의 흐름에서 빗겨가며 재즈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자들도 있었다. ECM의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의 문제의식과 태도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낸 일군의 연주자들은 그가 만든 레이블로 모여들어 둥지를 틀었다. 폴 블레이도 그중 한 명이다. 일찍이 50년대의 베테랑들과 하드 밥을 체험했던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마해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펼치며 재즈 팬들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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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ECM에서 발매된 독주 앨범 ‘Open, to Love’는 그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통속적인 멜로디에 대한 거부, 침묵의 적절한 활용은 레이블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부합했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곡들을 두 명의 전 부인이 작곡했다는 점이다. 칼라 블레이(Carla Bley)와 아네트 피콕(Annette Peakock), 이들이 폴과의 음악적 유대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자유분방한 인생관도 한몫 했으나, 재즈에 대한 맹렬한 탐구정신과 도전의식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open, to love (1972) / Close (1965) / Paul Bley/NHØP (1973) / Introducing Paul Bley (1953)


칼라 블레이는 폴과의 이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가 작곡한 <Ida Lupino>는 오랫동안 폴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국내 재즈 팬들에게 유독 사랑 받는 명곡 <Lawns>도 그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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