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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Apr 21. 2023

브리티시 포크의 국모

샌디 데니 1947.1.6 – 1978.4.21

  그 서늘한 목소리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어포트 컨벤션의 곡 <Fotheringay>을 들으면 을씨년스러운 흐린 날의 잿빛 하늘이 연상된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쓸쓸할 때 그보다 더 슬픈 음악에서 위안을 얻듯이 나는 이 곡에 진 빛이 많다. 가사의 배경은 16세기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가 투옥되었던 ‘포더링게이 성’이다. 굳이 노랫말에 이입할 필요는 없다. 기타와 보컬의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도 노래에 담긴 처연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곡을 부른 샌디 데니(Sandy Denny)는 개성 있는 목소리와 남다른 작곡능력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였다. 마성의 카리스마라 불릴 만큼 그녀는 주변 남성들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히 브리티시 포크의 ‘국모’였다. 당시 린다 톰슨(Linda Thompson)이나 펜탱글(Pentangle)의 재키 맥쉬(Jacqui McShee) 같은 여성 보컬들이 전통적인 브리티시 정서에 한정되었던 반면, 샌디 데니의 포용범위는 보다 넓고 보편적이었다. 그녀가 만든 <Who Knows Where the Time Goes>는 미국의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에 의해 불리며 더 유명해진 곡이다. 그녀는 밥 딜런, 레너드 코언의 곡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포함시켰고, 레드 제플린의 4집 앨범 수록곡 <The Battle of Evermore>에 게스트 보컬로도 참여했다.


  부질없게도, 그녀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니 미첼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도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몇 차례의 밴드를 거쳐 독립한 시기에도 그 남다른 감수성에서 나오는 흡입력은 여전했다. 그것은 매력을 뛰어넘는 섬뜩한 마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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