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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Apr 21. 2023

끝내 인정받은 어릴 적 꿈

니나 시몬 1933.2.21 – 2003.4.21

  니나 시몬(Nina Simone)은 좌절한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다. 음악대학원 입학에 떨어진 이유가 자신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미련없이 가수의 길을 택했다. 덕분에 우리는 불세출의 소울 뮤지션을 얻었지만 그녀의 삶은 화려했던 경력에 비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고 민권 운동가로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며 한때는 라이베리아로 떠나 음악을 잊고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음악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구원했다.


Hulton Archive/Stinnger/ Getty Images


  그녀가 남긴 명곡들은 동시대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했다. 데이비드 보위도 불렀던 <Wild is the Wind>,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되는 <Feeling Good>, 샤넬 향수광고에 삽입되어 깜짝 차트에 오른 <My Baby Just Cares for Me> 등 그녀의 노래는 시대와 영역을 초월해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곡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하여 원곡보다 더 깊은 감흥을 전달하기도 했다. <Sinnerman>을 비롯해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그녀의 개성이 돋보이는 곡들이다. 니나 시몬은 라이브 공연에서 밴드와 즉흥연주를 하는 순간에도 클래식에서 배운 작법을 자신의 연주에 과감히 적용했다. 특히 공연장에서는 ‘영혼의 제사장’이라 불릴 만큼 청중에게도 규율과 매너를 지키도록 지시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아티스트로서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이다.


  니나 시몬이 사망하고 얼마 후, 오래전에 입학을 거부했던 커티스 음악원은 그녀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다. 실로 50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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