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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Apr 24. 2023

글러브를 벗은 섬섬옥수

레드 갈란드 1923.5.13 – 1984.4.23

  레드 갈란드(Red Garland)는 복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전설의 챔피언 슈가 레이 로빈슨과 맞붙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선수로서 일찍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재즈사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한 명을 잃을 뻔했다. 글러브를 끼었던 그의 두 손이 피아노 건반 위에 놓이게 된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이질적인 경험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는 블록 코드 보이싱을 대중화시킨 인물로 꼽힌다. 양 손을 이용한 풍성한 화음에 매료되지 않을 자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갈란드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밴드에 영입한 자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일명 마라톤 세션이라 일컫는 ‘프레스티지 4부작’ 앨범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는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존 콜트레인의 사이드 맨이기도 했다. ‘Soultrane’과 ‘Lush Life’ 앨범의 가치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다. 그 매력에 더욱 집중하려면 피아노 트리오로서 발표한 앨범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1957년 앨범 ‘Groovy’가 적절한 예시가 될 것이다. 관악기의 배제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명징한 높은 음과 예민한 터치, 지속되는 스윙감을 느끼다 보면 새삼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 이래서 재즈를 듣기 시작했지’라며 되뇌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동료였던 마일스와 콜트레인이 새로운 문법을 고민하며 재즈 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 그는 모던 재즈의 언어를 조탁하며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고자 했다. 우리는 그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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