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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Apr 24. 2023

비운의 히트곡

피트 햄 1947.4.27 – 1975.4.24

  ‘제2의 비틀스’라는 말은 찬사가 아닌 멍에일 수도 있다. 배드핑거(Badfinger)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비틀스가 세운 애플 레코드를 통해 데뷔함으로써 그러한 그림자 속에 더욱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비틀스 멤버들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탄생한 데뷔 앨범은 어쨌든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비록 그 당시 아류 밴드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비틀스의 아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드핑거의 명곡들은 대부분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흔히 얘기하는 ‘비운의 밴드’라는 수식어는 다음 앨범 ‘No Dice’에 수록된 곡 <Without You>에 얽힌 스토리에서 비롯되었다. 이 곡의 작곡가가 피트 햄(Pete Ham)과 또 다른 멤버 톰 에반스(Tom Evans) 두 사람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곡을 리메이크한 해리 닐슨과의 법정소송, 이전 동료들과 벌인 저작권 다툼으로 피트와 톰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더욱이 레이블의 재정적 불안과 매니저와의 불화는 경제적 궁핍과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정작 자신들의 원곡은 빛을 못 보고 해리 닐슨의 리메이크가 세계적으로 히트했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간다.


  이 곡은 90년대에 머라이어 캐리에 의해 다시 한번 크게 히트했다. 가게에서 배드핑거의 이름으로 이 곡을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의 노래로 이 곡을 틀었다. ‘그대 없이’ 살아야 하는 절망을 그토록 가슴 사무치게 노래한 이는 오직 배드핑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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