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앨런 1940.7.20 – 2020.4.30
오늘날의 영어가 고대 게르만어에서 파생되어 라틴어, 프랑스어를 거치며 복잡한 언어체계를 만들어 온 것처럼, 영미권의 대중음악 또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식된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프로비트’도 그러한 맥락에서 20세기에 영국과 유럽에서 주목받은 장르다.
더욱이 2010년대에 와서 펠라 쿠티의 거의 모든 레코드가 LP로 재발매 되었고 박스세트로 묶여서 판매되기도 했다. 토니 앨런(Tony Allen)은 그와 함께 ‘아프리카 70’을 이끈 아프로비트의 개척자이다. 그들은 아프리칸 리듬과 결합된 특유의 펑키한 비트를 선보이며 본국인 나이지리아를 아프로비트의 성지로 만들었다. 펠라 쿠티 박스세트의 큐레이터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그를 가리켜 ‘가장 위대한 드러머’라 칭송했다. 그는 펠라 쿠티와 결별한 후 런던과 파리에서 주로 거주하며 다양한 뮤지션들과 교류했다. 백인들의 록 음악과 교배하던 그 시기를 ‘아프로펑크’라 칭하기도 한다. 토니의 음악 활동은 2000년대에 와서도 활발했다. 그의 드럼은 블러(Blur) 출신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고릴라즈(Gorillaz), 프랑스 듀오 에어(Air) 등 일렉트로닉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며, 세상을 떠나기 불과 3년 전에는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프랑스 재즈 맨들과 앨범을 내기도 했다.
토니에겐 장르는 물론 세대 간의 차이도 무의미했다. 변방에 머물던 아프리칸 펑크가 국경과 세대를 넘어 대중음악의 자양분이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토니 앨런은 그 중심에 가장 오래 있던 인물이다.